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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것들도 역시 우리가 사물을 그 자체로 고찰하는 한, 사물에 있어서의 아무런 적극적인 것도 나타내지 않으며, 사유의 양태 또는 우리가 사물들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형성하는 개념일 뿐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사물이 동시에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으며, 선과 악에 무관한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음악은 우울한 사람에게는 좋고,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기쁘며, 귀머거리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러나 사정이 그러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말들을 보존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본성의 전형으로 볼 수 있는 인간의 관념을 형성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러한 말들을 앞에서 언급한 의미 속에서 보존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에서, 선이란 우리가 우리 앞에 설정해 놓은 인간 본성의 전형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것이다. 또 악이란 우리가 그 전형처럼 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임을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인간이 이 전형에 더 가까이 또는 덜 가까이 다가가는 한에 있어서 그 인간을 더 완전하다거나 더 불완전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 보다 작은 완전성에서 보다 큰 완전성으로 이행한다거나, 보다 큰 완전성에서 보다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가 하나의 본질 또는 형상에서 다른 본질 또는 형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말이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이 곤충으로 변하는 경우처럼 말이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의 활동능력이, 그의 본성에 의하여 이해되는 한에 있어서, 증대하거나 감소한다고 생각한다.[각주:1]

 

T1000.0 : 자연상태에서 선과 악은 없다. 즉 본래 선과 악은 없다. 선과 악은 인간에게 있어 분별되는 것으로 자연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것이 다른 것에 득이 되고 또 인간에게 득이 되는 것이 다른 것에 해가 될 수 있다[전체로 봤을 때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다]. 인연따라 선도 되고 악도 되는데, 인간이 선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어야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토대인 자연을 해치며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은 결국 득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선이란 자기에게 득이 되면서 전체에도 득이 되는 것이 되겠다[자리이타]. 반대로 악은 자기에게 득이면서 전체에는 해가 되는 것이다. 한편 자기에게 해가 되면서 전체에게 득이 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맞지 않으며 악으로 규정될 때 뿐이다. 이때 악을 제거하는 행위는 선이다.  

 

  1. <에티카> p23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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