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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과 괴로움을 수행의 길잡이로.

1.

미움이 일어났다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일어났다는 것은 내 관점에 사로잡힌 거예요.
그러면 어디서부터 수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용서해 주는 것일까요? 세속에서 볼 때는 용서해 주는 게 훌륭한 인격입니다. 참는 것은 훌륭한 인격이죠. 그러나 거기에 수행이라는 말을 붙이면 안돼요.
그러니까 질문하신 분은 수행을 하는 게 아니고 참다가 떠뜨렸다가, 참다가 터뜨렸다가 세속적인 반응을 하는 거예요. 터뜨릴 때는 성질이 나쁘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고, 참을 때는 사람이 착하다는 소리를 듣겠죠. 그러나 이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상태, 즉 꿈속에 있는 것이에요.
그 사로잡힌 상태를 사로잡힌 줄 알고 놓아 버릴 때부터 '수행'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용서하느냐, 참느냐'하는 것을 수행의 과제로 삼으면 안돼요. 참는 것을 과제로 삼는 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길에 있는 것이에요.

2.

상대를 이해하는 것에서 수행이 시작된다는 말이 상대가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이죠. 내 것을 고집하지 말라는 이야기지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관점을 잡아서 공부해야 해탈의 의미를 이해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다가 터졌다가, 참다가 터졌다가 하면서 한 생을 사는 거예요.
참는 공부보다 놓아 버리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놓아지지 않을 때 일시적으로 참는 공부를 하는 거지. 참는 게 공부의 목적이 되면 안됩니다.
미워함이 없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미워함이 없는 것은 서 로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3.

그런데 우리는 그게 잘 안됩니다. 탁 부딪칠 때 나도 모르게 생각이 내 중심으로 되기 때문에 '왜 저렇게 하는 거야?'하며 미워합니다. 그럴 때 '내 생각에 사로잡혔구나.' 하고 탁 돌이키면 내 마음속에 있는 답답함이 없어집니다. 또 '아,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이해하면 내 마음속에 있는 답답함도 없어지고 참을 것도 없어집니다. 이렇게 놓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물론 잘 안 됩니다. 잘 안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니까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쉼없이 하는 것이 정진입니다. (마음이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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