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푀르크젠 그럼 우리가 행하는 첫 번째 구분은, 실재를 구축하는 기원인 알기(knowing)의 빅뱅 같은 것이군요. 어쨌든 무언가를 볼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의 구분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군요.

 

마뚜라나 바로 그렇습니다. 오직 구분되는 것만이 존재합니다. 설령 그것이 우리 자신과 구분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구분의 작동을 통해 그것과 묶여 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구분할 때마다, 구분되는 실체는 그 구분의 의미를 갖는 어떤 배경과 함께 출현합니다. 구분되는 실체는 그것이 존재하는 영역을 산출합니다.

 

푀르크젠 좀 더 구체적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사례를 하나 들어줄 수 있나요?

 

마뚜라나 다음과 같은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어느 날 저녁 당신은 파티를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을 방문합니다. 몇몇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에 갑자기 누군가 당신의 어깨를 칩니다. 당신은 돌아서서 그가 수년 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라는 걸 알아차립니다. 당신은 말합니다. "아니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당신은 그가 어디에서 왔으며, 누가 초대했는지, 생활은 어떠한지 등등에 대해서 그에게 물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당신은 하나의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결들의 영역을, 그의 출현에 의미를 부여하는 배경을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의 그의 갑작스런 출현은 그 놀라운 낯섦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T1000.0 : 개인적으로 오직 차이나는 것만이 앎이 된다고 알아오다가 여기 '구분되는 실체는 그 구분의 의미를 갖는 어떤 배경과 함께 출현한다'는 말에 앎이 어떻게 펴져나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구분과 함께 출현하는 배경에 대한 앎이 또다른 구분과 배경과 함께 출현하며 연결들의 영역을 성찰하게 되는 것.    

 

T2020

앎의 배경을 창조하는 것, 앎이 세계를 산출하는 것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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