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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뚜라나 언어는 감옥이 아닙니다. 언어는 하나의 존재 형식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자 방법입니다. '언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라는 단순한 표현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다른 공간이, 즉 언어를 넘어서는[초월하는] 어떤 공간이- 설령 그곳에 결코 다다를 수 없다 할지라도 - 존재한다고 믿도록 만듭니다. 나는 그렇게 가정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언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언어를 넘어서 존재하는 어떤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뜻합니다. 정말이지, 그와 비교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생각해 보세요. '만일 모든 것이 우주의 일부라면, 우리는 도대체 그 우주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까?' 대답은 자명합니다. '내가 가는 곳이 모두 우주이다.' 우리는 분리할 수 없이 더불어 움직입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p45
T1000.0 : 볼 때는 '봄'만이 있다. 가령 우리가 붉은 꽃을 볼때 본다는 것이 가능하기[또는 실재하기] 위해선 과정으로 '봄'의 관계에서 나는 봄의 일부[하나]가 된다. 뜰아래 붉은 꽃을 본다는 것은[붉은 꽃은 그자체로서 실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이도록 하는 빛과 꽃, 반사, 눈동자, 공기, 수분 등등등 속속들이 우주가 하나가 되는 것을 통해 봄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분리할 수 없이 더불어 움직인다. 대상도 주체도 없이 하나인데 우리는 대상과 주체를 가립한다. 가립은 상과 언어를 통해 세워진 것인데 대상과 주체의 분리를 언어를 통해 실제로 여겨 독립된 것으로 여기나 '봄'이 가능한 것은 주체와 대상이 분리할 수 없이 더불어 움직일때만이 가능하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언어는 유익하면서 동시에 유감스러운 것으로 하나의 존재 형식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자 방법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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