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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뚜라나 나에게 새로운 종류의 진리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관찰자와 관찰하기의 작동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나는 하나의 연구 주제를 도입하고, 동시에 그것을 다루는 방식을 특징지으려 합니다. 정말이지 우리는 어떤 것이 주어져 있고 존재한다는 바로 그러한 관념이, 그리고 어떤 실재나 어떤 종류의 진리에 준거한다는 것이 불가피하게 언어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매우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진리 또는 실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건 모두 언어의 이용가능성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것으로 가정되는 것은 오직 언어를 이용할 수 있을 때에만 서술이 가능해지고, 또 언어에 의한 구분 행위를 통해서만 드러나게 됩니다. 심지어 우리가 순수의시의 상태로 옮겨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명상 과정에서 조차, 우리는 그와 같은 상태의 성찰이 언어 없이는 달성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p44
T1000.0 : 유식 30송에 "아와 법의 가설로 말미암아 상이 생겨나나, 그것은 식에 의해서 변화된 것이며, 변화하는 식은 셋뿐입니다."라고 하는데, 아와 법을 가립하는 것은 언어의 기능이다. 그런즉 언어는 아와 법이 독립되어 있는 것으로 가정하는 기능을 갖는 면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리고 있으나 그러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성찰이 언어 없이는 달성될 수 없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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