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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앎

언어 가리개

T1000.0 2020. 12. 20. 16:53

1.
명칭이 붙으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함으로 53)

2.
재귀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의 흐름 속에서 언어가 생기려면, 언어적 영역에서 언어적 영역 자체에 속한 행동들의 상호조정이 일어나야 한다. 언어가 생기면 언어적 구분의 언어적 구분인 객체가 생긴다. 객체는 그것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행동조정들을 가리는 작용을 한다. 예컨대 '탁자'라는 낱말은 우리가 어떤 탁자를 둘러싸고 하는 행위들과 관련해 우리의 행위를 조정한다. 그러나 '탁자'라는 개념은 우리의 구분행위가 '탁자'를 산출한다는 사실을 못 보게 가린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언어 안에서 존재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성찰적 과정 속에서 언어적 구분을 언어적으로 구분할 때 우리는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어 안에서 작업한다는 것은 서로 일치하는 공동개체발생적 구조접속의 영역에서 작업함을 뜻한다.
(앎의 나무 238)

3.
그런데 책상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책상이라는 사물이 눈앞에 없더라도 같은 이미지가 항상 떠오릅니다. 이는 책상에 대한 인상을 고정시켜서 말로 표현한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사물을 그와 같이 보게 되는 힘, 곧 종자가 책상이라는 영상을 동일불변의 실체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책상의 실제는 만남의 조건에 따른 변화이지만, 말의 영상은 늘 일정하게 됩니다. 책상의 변화가 언어로서의 고정된 이미지인 책상이라는 틀에 의해서 얽매이게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책상이라는말이 책상으로부터 파생된 것 같지만, 책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책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명언종자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구조 속에 놓여 있는 것이지요. 우리들의 생각이 현실을 떠나 있다는 것입니다. 말의 자성은 허망이요, 생각은 허상의 집합이요, 책상은 변화의 한 현상이 뿐입니다. (유식 30송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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