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그것은 브레겐츠에서의 체험으로 거슬러 갑니다. 철학자들과 칼 포퍼의 신봉자들이 콘래드 로렌츠가 전개한 진화론적 인식론을 비판해 달라고 나를 초대했습니다. 나는, 우리가 분명 매우 다른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로렌츠 같은 그렇게 뛰어난 생물학자를 비판하는데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강의에서 신경체계의 폐쇄성을 다루었고, 매우 일반적으로 그리고 모든 종류의 인식론을 참조하면서 어떠한 인간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 노력했습니다. 이어진 토론에서 실재 문제가 모든 것을 압도했습니다.
(함으로 304)
2.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누가 옳은지, 누가 종의 출현, 환경과 적응이라는 현상의 존재와 영향력 등에 대한 진리를 갖고 있는지를 묻지 않는 군요. 대신 당신은 로렌츠가 대변하는 견해에 비해서 그저 그르다고 할 수 있는 견해를 내세우는군요.
맞습니다. 저에게는 누가 결국에 옳으냐 하는 끔찍한 질문이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편협함(불관용)과 싸움만이 지배하는 그런 논의에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다른 생각(사고)을 논박하고 싶어하는, 그래서 다른 사람을 물어뜯고는 결국에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다른 관점을 변호하고 싶고, 우리가 로렌츠의 문장들을 뒤집을 수 있고, 말해진 모든 것을 거꾸로 세울 수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예를 들어 우리 스스로를 우리들의 세계를 발명하는 사람 혹은 산출하는 사람으로 이해한다면 그때 적응의 문제는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그런 문제는 사라지는 것이지요. 우리가 발명할 수 없고, 우리에게 맞지 않는 것을 어떻게 발명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이미 적응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이런 관점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관점입니다. 인간은 모든 것, 모든 현상의 아비요 어미가 되는 것입니다. (발명품 34)
3.
"주께서는 인간에게 공기를 주셨는데 법률은 그것을 인간에게 팔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법률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 <레미제라블>의 미리엘 신부가 창문세/출입문세를 받는 법에 대하여 한 말 -
'나의 사구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두[근본적인 질문]와 체험 (0) | 2021.01.08 |
---|---|
철학적 물음과 과학적 대답의 혼합 (0) | 2021.01.08 |
통찰력의 본보기 [이브의 성찰] (0) | 2021.01.04 |
< 환상적인 세계 > 정리 (0) | 2021.01.03 |
무위 [다만 할 뿐, 그게 답니다] (0) | 2021.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