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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뚜라나 대체로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재능은 있으나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도무지 창의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내가 인지라는 주제는 피하고 단지 내 실험들을 계속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랬다면 이미 노벨상을 받았을 거라고 말입니다. 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의학부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내 작업이 분명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언짢았지만, 어느 날 한 친구가 내가 꼭 이해받아야 하는지, 도대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을 필요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정말 그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해받아야 하는 거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작업을 진지하게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나는 어떠한 논쟁도 피하지 않았고 내 견해들을 확고하게 옹호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진정,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이 사실상 나에게 특별한 영향을 미치거나 나에게 특별한 압력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내 주장들은 아직까지 논박되지 않았습니다.

 

마뚜라나 나 역시 이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사람들에 대해, 그것들이 마치 관찰자와 독립적인 실존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씁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것도 관찰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관찰자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말하고 쓰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쓰기 그 자체의 과정 속에 주어진 것으로 보통 생각하는) 어떤 것의 생산과정들에 대해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마뚜라나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누구도 확신시키고 싶지 않고, 사람들을 순환적인 세계관을 갖도록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혁명가가 아니며 내 자신을 세계를 변화시키는 임무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단지 어떠한 과정들이 어떻게 해서 어떠한 존재[실체]들을 산출하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입니다. 그게 답니다. 나는 오늘도, 내가 마치 무한한 양의 시간을 가진 것처럼, 급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나만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젊었을 적에는 -심지어 60년대 초반에는- 사정은 어쩌면 이와 달랐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 견해들을 확신시키고자 했습니다. 나는 이제 이러한 의도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날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사람들을 확신시키려 애쓰면 애쓸수록, 너는 점점 더 믿을 수 없게 되는 거야.' 나는 그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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