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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가르침처럼 모든 것이, 모든 행위가 마음이 짓는 바라고 하면 마음은 언어로 표현될 수 밖에 없으며 이 마음이, 또는 이 언어가 출현하는 상황은 마뚜라나가 말하는 '행위의 조정의 조정'이 발생할 때이다. 가령 제자가 스승에게 '불법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때 이는 바로 언어가 출현하는, 질문자의 '행위의 조정의 조정'을 유발할 질문을 제자가 던지는 것이고 이는 언어를 통해, 그러니까 언어가 아니면 발생할 수 없는 '조정의 조정' 과정인 것이다. 이때 스승은 언어가 출현하고, 마음이 짓기 시작하는 이 단계에서 무의미한 대답을 통해 '조정의 조정'의 과정을 되돌려 공의 이치를 깨우치는 안내자 역활을 한다. 불법이 무엇인지는 실로 그 대답이 어떻든지 언어의 출현과 그 이전을 깨닫는데 있다.
마뚜라나 내 견해는 그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언어 현상은 상호작용의 역사를 통해 진화해 온 특수한 구조적 합치로부터 출현합니다. 언어 출현을 위한 전제 조건-'행위들의 조정의 조정'-을 한 번 성찰해 보세요. 나는 상징들이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차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언어 사용의 '원 상황'은 일상적인 상황입니다. 2차선 도로의 가장자리에 서서 택시를 잡으려 애쓰고 있는 사람을 상상해 보세요. 제 방향으로 지나가는 택시들은 전부 승객들이 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마침내 반대쪽에서 달리고 있는 택시를 세우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눈을 마주친 다음 택시 기사에게 다시 허공에 원을 그리면서 손짓을 합니다.
푀르크젠 그럼 택시 기사는 방향을 바꾸어서 ......
마뚜라나 바로 그렇습니다. 그 손짓 때문에 택시 기사가 차선을 바꾸고 승객을 맞으러 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이제 당신은, 예를 들어 당신이, 도로의 진행 방향에 갑자기 나타나 정차한 다른 택시를 그 사람이 이용하기로 결정한다는 것을 관찰할 때, 그리고 반대편에서 차를 돌린 먼저의 그 택시 기사가 그에게 "거기서 날 불러 놓고 지금 왜 그 택시를 잡는 거죠?"라고 소리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즉각적으로 알아챌 것입니다. 겨우 눈이 한 번 마주쳤고, 두 번의 팔 동작이 있었을 뿐이지만, 그것들은 발화들로 이해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일어난 일이 '행위들의 조정의 조정'입니다. 첫번째 팔 동작과 눈이 마주친 순간에서, 택시 기사와 잠재적인 승객은 호혜적인 관계와 경계에 놓이게 됩니다. 그 승객이 허공에 그린 두 번째 팔 동작은 그들의 조정이 조정되도록 만듭니다. 상호작용의 흐름 속에 이러한 '행위들의 조정의 조정'이 존재하는 때에는 언제나 언어가 존재합니다. 나는 이것들이 우리가 언어가 일정한 상황 속에서 사용된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들이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함으로 143) 1
세계는 언어 속에서 출현한다.
- 1세우고, 2돌리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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