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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체험이란 눈과 형상이 만나는 세계, 귀와 소리가 만나는 세계, 코와 냄새가 만나는 세계, 혀와 맛이 만나는 세계, 몸과 만나는 느낌의 세계, 생각의 세계입니다. 이 여섯 쌍의 만남의 세계는 현실과 선정에서 같게 또는 달리 경헙됩니다.(23)
곧 현실 체험과 선정 체험은 모두 '만남의 조건'에 의해서 경험되는 세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도 귀에 들리는 소리도 '만남의 조건'만 달라지면, 얼마든지 다른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만남의 조건'이란 말이 중요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몸과 마음, 선정에서의 몸과 마음은 서로 다릅니다. 같은 몸과 마음이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정 체험을 통해 새롭게 된 몸과 마음의 흐름만 있다는 사실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 무엇이 있어서 아는 것이 아니고, 아는 상태의 흐름만 있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24)
앎의 흐름은 연기관계인 '만남의 조건'에 의해서 변하는데, 만남의 조건이 비슷할 때에는 앎의 흐름이 비슷하지만, 다를 때에는 앎의 흐름이 뚜렷하게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의 앎은 중생의 조건을 바꾼 경험이 없기 때문에, 늘 아는 것과 알려진 것의 범주 안에서만 앎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생의 조건을 벗어난 선정의 체험 세계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만남의 조건'을 조건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절대시하게 됩니다. 우선 나를 절대시하고 나아가 대상을 절대시합니다. (24)
이제 우리는 갈등의 원인을 알게 됩니다. '자신을 절대시하면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것'이 갈등의 원인인 자기 소유를 키워 가는 것입니다. 이젠 내가 당연히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대상을 철저히 타자화시킵니다.
소외는 소유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소유를 비워가는 것이 갈등을 푸는 것입니다. 모든 소유를 버리면, 아와 법의 타자화된 갈등이 없어져서 바람직한 삶이 됩니다.(25)
물론 보통 중생의 소유와는 내용을 달리하지만, 그 근본이 소유이기 때문에 세간과 출세간 사이에 갈등이 있게 하므로 진정한 비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정의 세계만을 추구하고자 해서도 안 되며, 항상 벽을 열어서 소유가 없게 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특별한 선정 상태의 추구가 아니라, 앎의 흐름에 충실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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