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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지止수행'에서 '오직 마음뿐이요, 경계가 없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이 단지 그와 같은 생각 속에 머문다는 뜻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무상한 일상의 마음이 인연을 다 드러내는 것으로 그것 밖에 다른 마음이나 세계가 없다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인식과 상관없이 대상이 있다는 생각이 망념이므로, 지수행은 망념의 갇힌 생각을 떨쳐버리고 하나의 생각 속에도 머물지 않는 인연의 알아차림, 곧 현재에 온전히 깨어 있는 마음입니다.

'마음 뿐이다'라는 생각을 주제로 하여 망념을 넘어서는 습관을 익히는 것이며, 경계만을 마음이 만드는 것이 아니고 마음조차 마음이 만들어 마음처럼 있는 줄 잊지 않는 것입니다.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고 마음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나친 의욕은 몸과 마음에 힘이 들어가 지치거나 잠에 빠지게 되므로 몸과 마음에 있는 힘을 모두 빼고, 흐름에 깨어 있는 상태에서 '모든 것이 마음이다'라는 주제를 잊지 않고 가볍게 떠올리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행을 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뚜렷한 이해가 없고 수행에서 재미가 생기지 않는다면, 잠을 자거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수행을 게을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창조적인 현재를 살지 못한 무기력한 일상이 되어 함께 어울린 삶조차 창조적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인연을 창조하는 빈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럴 때는 자비심을 기르는 '관수행觀修行'을 해야 합니다. 자비심이란 수행의 결과에 의해서 얻어지는 마음이 아닙니다. 자비가 곧 수행의 완성입니다. 자비 수행은 포근하게 자신과 이웃을 감싸안은 마음입니다. 나의 견해나 나의 사랑으로 이웃을 장식하는 빛이 아니라 제 빛으로 빛나게 하는 포근한 감싸안음입니다. 이웃들의 다름을 기꺼이 품어주는 너그러움입니다. 상대를 제도한다거나 구원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견해에 비친 너가 되도록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다름들이 나와 너의 만남에서 '나'가 되고 '너'가 되지만, 너가 나가 돼서도 안 되며 될 수도 없지요.

평등이란 부처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같은 것으로 평등이 아니라 나의 몫으로 온 삶이 되고 너의 몫으로 온 삶이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부서진 조각이 되지 않는 법계일상의 평등입니다. 나무도 나무를 버리지 않고 나무로서 법계일상을 살고, 새도 새를 버리지 않고 법계일상이 되어 온 삶으로 소통되는 것에서 평등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자비자비는 높은 데 있는 누군가가 낮은 데 있는 누구에게, 또는 많이 갖고 있는 누군가가 그렇지 않은 누구에게 베푸는 것일 수 없습니다. 나와 나의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일이 생명의 온전한 표현으로 인연이면서 머물지 않는 생명 본연의 흐름입니다. 생명은 생명이라고 하는 무엇이 흐르는 역사가 아닙니다. 매순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인연들이 만나 잠시도 머물지 않는 무상한 변화가 생명의 활동이므로, 자비의 나눔이 생명 본연의 인연을 현재의 삶에서 나타내는 활동이 됩니다[각주:1]

 

T1000.0 : 수행은 재미있어야 한다. 새로운 앎이 생기고 변하는 경험은 힘들지만 재미를 준다. 힘만 들고 재미가 없다면 무언가 어긋나 있는 것이므로 그럴 때는 왜 힘들까 계속 물으면서 선행을 하여 선근을 키우는게 방법일 것이다. 

자비는 '상대를 제도한다거나 구원하는 일이 아닙니다'는 위의 말씀에 <금강경>에 있는 '하지만 나는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하기는 해도 실은 어느 한 중생도 구한 게 없다'고 한 부처님의 말씀이 자비행을 뜻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1. <대승기신론2> p42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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