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마음이란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은 주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객관을 반영하기만 하는 거울도 아닙니다. 무상한 관계의 변화가 앎으로 나타날 때 마음처럼 그렇게 있습니다. 객관도 마음 밖에 객관만으로 실재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나타난 변화에 대한 앎이 없다고 한다면 주관이니 객관이니 하는 말조차 무슨 뜻이 있겠습니까.

그런 뜻에서 마음으로 발현하는 앎이 인연의 총상이 되며 마음 하나가 창조된 세계의 모든 것이 됩니다. 세계가 마음 밖에 따로 있고 그것을 마음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무상한 인연을 아는 것이 바로 현재를 다 아는 것이며 창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무상하다'는 사실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무상無相한 인연을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무상이라는 언어 이미지를 갖는 이해가 깨달음이 아니라, 걸림 없는 무상한 인연처럼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가 깨달음입니다. 깨달음과 실천이 하나 된 증오證悟가 어려운 이유입니다.

이미 갖고 있는 언어 이미지를 재현하면서 안다고 하는데, 이미지 만으로는 변화를 담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이미지만의 앎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순간의 형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거나, 시간의 흐름을 읽는 변화라고 하여도 변화라는 이미지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변하면서도 정체성을 갖고,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변하는 인연의 무상은 재현된 이미지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마음이라는 이미지조차 벗어나야 합니다.

'오직 아는 것이며 마음뿐[唯識, 唯心]'이라는 뜻은 이미지를 재현하고 재구성하는 기억의 재생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지에 집착하는 마음은 재구성된 마음으로 허망한 마음이며 생멸하는 마음입니다. 무상한 인연이 마음 하나로 드러나는 마음은 이미지를 만들되 이미지에 머물지 않는 마음으로 진여의 마음입니다.[각주:1]

 

T1000.0 : 오직 아는 것이며 오직 마음뿐. 마음이 앎이며 그런데 앎은 또한 모름이다. 일어난 마음을 앎으로 알지만 마음이 왜 일어나는지 어떠한 질서로 생겨나는 것인지 모른다. 마음은 앎이면서 모름이기에 앎므로도 모름으로도 잡히지 않는 게 마음이며 앎에도 모름에도 머물지 않는 게 또한 마음이다. 안다고 해서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른다고 해서 모르는 것도 아니며 앎이면서 모름이고 앎도 아니고 모름도 아닌 묘한 무상한 마음, 오직 이 마음 뿐. 

 

인연도 마음도 무상한 흐름일 뿐. 오직 흐름 뿐.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는 흐름. 흐름  

 

 

 

  1. <대승기신론2> p426 [본문으로]

'정화스님 풀어씀 <대승기신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비 수행  (0) 2012.11.20
자비가 곧 수행의 완성  (0) 2012.11.20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0) 2012.11.20
관계에서 조화로운 삶  (0) 2012.11.20
수행의 이익  (0) 2012.11.20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