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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앎

절대긍정과 존중

T1000.0 2012. 7. 26. 11:08

더 정확히 뜻하자면 "어떤 것도 그 자체로 진리가 아니며, 어떤 것도 그자체로 가치로울 수 없으며, 타당하거나 수용가능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전 글에서 모든 것은 그자체로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라고 간단히 말했다. 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면 약초에 비유해 말했던(명의) "세상에 약초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긍정할 것이다. 또한 약초와 약초 아님을 우리 몸(마음)이 구분한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우리 몸에 어떤 약초는 좋은 것이거나 나쁜 것이 된다. 덧불여 우리 몸이 변하면 약초와 약초 아닌 것도 변한다고 했는데, 다만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진화의 과정을 염두한다면 우리 몸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변하고 있으나 한평생의 몸은 유한하다. 때문에 한평생의 관점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은 구분될 수 밖에 없는데, 단 구분되는 것이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 속에서 구분될 뿐이다. 또한 이 구분은 나 또는 우리의 구분이기도 하다. 나 혹은 우리에게 약초 아닌 것이 타인 혹은 저사람들에게는 약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긍정은 당연히 나쁜 것도 긍정한다. 왜냐하면 약초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실천적 의미에서 절대긍정이 긍정하는 방식은 존중이다. 즉 절대긍정은 나쁜 것도 존중한다. 그리고 존중은 인정과 이해의 과정을 포함한다. 존중을 통한 인정과 이해를 통해 우리는 어떤 것을, 즉 우리에게 나쁘다고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분리할 수 있다. 바른 이해와 결정은 반드시 존중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하겠다.(또한 바른 이해를 위해 강조되야 할 것은 경청이다.) 

 

마뚜라나 존중은 결코 끝나는 법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 우리가 위험하다고 그래서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분명 행동을 할 것이고 그들에 맞설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세계에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의 행위들에 대한 이러한 종류의 정당화가 결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행위들을 위한 지반들을 제공하기 위해 어떤 초월적인 실재나 진리에 호소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책임을 충분히 자각하면서 행동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를 좋아하지도 원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활동적이 되면 책임 있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거부하거나 상호존중 속에서 분리를 수행합니다.

 

푀르크젠 선생님이 여기에서 제안하고 있는 관용과 존중이라는 다소 이례적인 구분과 관련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이 두 개념은 보통 동일한 것으로 생각되어 동의어로 사용됩니다.

 

마뚜라나 맞습니다만, 그것은 엄청난 잘못입니다. 어쩌면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우리를 깨우쳐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칠은 히틀러를 매우 존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히틀러의 진짜 의도를 이해했던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처칠은 국가사회주의[나치즘]를 반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체임벌린은 히틀러에게 엄청난 관용을 배푼 결과 그를 올바르게 평가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체임벌린은 히틀러와의 정말로 어리석은 협약을 맺고야 말았습니다.  

푀르크젠 결과적으로 이러한 존중의 태도가 우리로 하여금 언젠가-책임에 대한 완전한 자각을 가지고-총을 사용하자고 결정하도록해도 너무나 당연한 건가요?

 

마뚜라나 물론입니다. 사람을은 <나의 투쟁>을 읽고, 이 책에서 히틀러가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매우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 뒤에 그들은 자신들이 거기에 기술된 세계와 자신들 앞에 제시된 강령을 정말로 원하는지 결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실재들에 대한 존중만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주의 깊은 행위들을 취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결정하기 위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적들에 관용을 배푸는 사람들은 그들을 똑바로 보지 못합니다. 그들 자신의 믿음이 그들의 지각을 흐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들을 존중하게 되면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들에게 맞서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p7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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