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저를 어떻게든 특정한 범주에 넣으려는 당신의 시도와 당신이 사용하는 그러한 인식론적 어휘들은 나 자신을 상당히 불행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내게 보여준 그런 입장에서는 존재론이라는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끔찍한 사고방식에 다시 들어가게 하는 뒷문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입장을 따를 경우 우리는 또다시 외부세계의 존재에 대해서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외부세계와 주어진 것에 기댐으로써 각자의 책임이라는 것이 제거됩니다. 이 점이 존재론의 아주 끔찍한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아무런 죄가 없어 보이는 '뭐가 있다'라는 공식을 도입하는데 이는 제가 농담 삼아 그리고 다소 불쾌하게 '외적으로 존재하는 연산자'라고 불렸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강압적으로 말합니다. '그게 이렇다. 뭐가 있다'라고. 그런데 뭐가 있다는 말입니까? 뭔가가 사실이라고 누가 주장합니까? 저는 그렇게 실재하는 것 그렇게 주어진 것을 우리 자신의 생산물이자 우리 자신의 발명으로 파악할 것을 주장합니다. (발명품 36)
2.
가장 끔직한 예, 나치 시절 아이히만. '명령에 따랐을 뿐, 책임이 없다'는 변호는 아주 끔직하다. 다시 강조하면 "그러나 외부세계와 주어진 것에 기댐으로써 각자의 책임이라는 것이 제거됩니다. 이 점이 존재론의 아주 끔찍한 모습입니다."
파시즘의 대중심리,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있음에서 함으로[원리전도몽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차 수준의 개념[맹점] (0) | 2020.02.27 |
---|---|
< 서산이냐 동산이냐 결정의 문제 > (0) | 2020.02.13 |
< 옳다가 아니라 다르다 > (0) | 2020.02.13 |
산출해냄, 혹은 유식 (0) | 2020.02.12 |
< 표상 > 일체유심조 (0) | 2020.02.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