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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뚜라나 어떤 강의의 말미에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신을 믿습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신의 왕국에 살고 있습니다." 질문자가 반복했습니다. "선생님은 신을 믿습니까?" 나는 다시 대답했습니다. "나는 신의 왕국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다시 한 번 반복했습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선생님은 신을 믿습니까, 아니면 믿지 않습니까?" 나는 마침내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만일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거나 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해도 어쨌든 나를 좋아하겠습니까?" 그의 고집은 차별을 위한 욕망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푀르크젠 그렇다면 선생님의 대답은 실제로 '신의 존재는 신념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이군요.
마뚜라나 나는 신을 믿는 사람들이 심각한 의심들에 의해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1
T1000.0 : "나는 신의 왕국에 살고 있습니다." 마뚜라나의 답변은 정말 멋지다. 마뚜라나는 모두가 어울려 사는 이 세상을 하나도 훼손하지 않으면서 답변을 하였다. 그리고 모두가 어울려 사는 이 세상에서 신의 존재를 고집하는 것은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차별을 위한 욕망의 문제라는 지적이 날카롭다. 왜냐면 신을 고집하면 그로부터 인간이 소외되고 다시 신을 믿는 인간을 고집하면 신을 믿지 않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차별을 위한 욕망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신이 있다없다의 논쟁은 참거짓을 증명할 수 없는 무의미의 영역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는 말이 아닌 침묵으로, 그러니까 자신의 삶으로 신을 증명하는, 즉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비트겐스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한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 마뚜라나 대담집 <있음에서 함으로> p16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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