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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둘이서 <안티-오이디푸스>를 썼다. 우리들 각자는 여럿이었기 때문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에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는 것까지 손에 닿은 것이면 무엇이든지 이용했다.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는 교묘한 가명들을 분배해 놓았다. 그렇다면 왜 우리 이름은 남겨뒀는가? 관례상, 그저 관례상. 바로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가 행동하고 느끼고 사유하게끔하는 것을 지각할 수 없게 하려고.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만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니까. <해가 뜬다>고들 말하지만, 그건 사람들의 어법일 뿐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더 이상 <나>라고 말하지 않는 지점에 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고 말하든 말하지 않든 더 이상 아무 상관이 없는 지점에 이르기 위해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도움을 받았고 빨려들어갔고 다양화되었다.[각주:1]

 

T1000.0 : <천의 고원>이 시작된다. 서론 첫문단의 기운을 떠올리게하는 단어는 <금강경>에 나오는 무실무허無實無虛. "나라고 말하지 않는 지점에 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고 말하든 말하지 않든 더 이상 상관없는 지점"이란, 나라고 말할 것도 없고[無實], 나라고 말하지 않을 것도 없는[無虛] 지점, 그 지점에 이르기 위해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니다"[無我]. 무아란, '나'는 없으며 '나'가 없는 것도 없는 무실무허.  

 

 

  1. 김재인 옮김, <천개의 고원> p1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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