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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말에 귀 기울이도록 그들을 초대한다는 말인가요? 하지만 초대라고 하는 것은 신속한 행동이 요구 될 때에는 커다란 맹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의상 정당하게 거절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률을 공포하고 규범을 정식화하는 사람들은 속도라는 엄청난 이득을 봅니다. 필요한 권력이 주어지면, 그들은 사람들에 대한 신속한 통제를 획득할 수 있고 그들 자신의 목적들과 의도들과 관련해서 그들을 신속하게 정렬시킵니다. 어쩌면 초대들은 때때로 솔직히 너무 늦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안일 수 있을까요? 자유의 황홀한 이점들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사슬에 묶어야만 할까요? 폭력을 거부하라고 우리가 사람들을 강제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접근법은 결코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내 견해는 이렇습니다. 소위 윤리적 법률과 규범들조차도 성찰의 가능성을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개인적으로 책임 있는 행동의 토대들을 제거하고 복종을 요구합니다. 더 면밀히 살펴보면 그것들은 폭정을 위한 또 하나의 표현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어떤 세계관이나 삶의 방식이 선택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들의 믿음과 행위들에 내재해 있는 결과들을 그들에게 제시해 줄 수 있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무엇을 하도록 강제하거나, 사물에 대한 특정한 관점을 받아들이도록, 다소 폭력적으로, 그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함으로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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