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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원효는 특정한 신분이 없이 살았습니다. 원효라고 하는 성품, 원효라고 할 만한 어떤 명분이나 직분이 없었어요. 스님이 법당에서 청소를 하면 '스님이 청소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청소할 때는 청소부가, 농사를 지을 때는 그냥 농사가 됩니다. 장사를 하면 스님이 자사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장사꾼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이것이 <법성게>에서 이르는 불수자성 수연성입니다. 물이 그릇을 따라 모양을 바꾸듯이 '스스로의 성품을 지키지 아니하고 인연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원효라고 할 수 있는 고정된 성품이 없이 그저 인연따라 역활을 다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백억화신이에요.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동굴이든 절이든 원효대사가 처음 지었다거나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곳이 많습니다. 원효라고 할 것이 하나도 없다 보니 원효 아니라고 할 것도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보니 온갖 곳에 원효가 나타나지요. 그런데도 막상 원효는 아무 데도 없는 거예요.
(지금 여기 깨어있기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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