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 자기원인이란, 그것의 본질이 존재를 포함하는 것, 또는 그것의 본성이 존재를 제외하고는, 생각될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T1000.0 : <에티카>가 시작된다. 스피노자는 정의 끝에 '나는~이해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새겨볼 점이라 생각한다. 첫번째 정의는 자기원인. 기하학적 증명을 위해 원인이 필요하므로 자기원인을 첫번째 출발로 삼고 있다. 스피노자의 자기원인이란 예를 든다면 오행 같은 것이 아닐까. 목화토금수의 오행. 목은 흙을 뚫고 나오는 목의 본질이 나무라는 존재를 포함하며 나무라는 것들과 그와 같이 표현되는 존재를 제외하고는 본성이 생각될 수 없기에. 허나 나무는 자기원인이 아닌데, 나무가 목의 존재로 증명되기는 하나 나무가 없어진다고 본질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그러나 목을 자기원인이라 할 수 없는데 목은 화토금수와 서로 힙입어 생성하는 본질이므로 자기 원인이라고 하면 틀리다. 자기를 벗어나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자기원인, 아무튼 수학적 질서로 표현하기 위해선 원인이 전제되어야하고 그 원인을 자기원인으로 정의해 시작한다.
정의 2. 동일한 본성의 다른 것에 의해서 한정될 수 있는 사물은 자기의 유(類) 안에서 유한하다고 일컬어진다. 예컨대, 어떤 물체는 우리가 항상 그것보다 더 큰 다른 물체를 생각하기 때문에 유한하다고 일컬어진다. 그런 식으로 사유는 다른 사유에 의해 한정된다. 그러나 물체는 사유에 의해 한정되지 않으며 사유는 물체에 의해 한정되지 않는다.
T1000.0 : 1. 사유는 다른 사유에 의해 한정된다. 예컨대 동서남북은 사유다. 동서남북이 실제 있는 것이 아니다. 상징적으로 말해 사유를 이름으로 통칭한다면 사물은 이름에 의해 한정되지 않으며 이름은 사물에 의해 한정되지 않는다. 이점은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나아가 불교적 관점에서 고쳐말하면 모든 물체는 공하다. 물체는 사유[마음]에 의해 한정되지 않으며, 사유[마음]는 물체에 의해 한정되지 않는다. 물체에 대한 이해는 마음의 상[이름/사유]이 짓는 것이므로 이해했다고는 하나 물체는 사유에 한정되지 않기에 이해한 것도 아니다.
2. 사유는 다른 사유를 한정하므로 사유안에는 차별이 있으나 물체는 사유에 의해 한정되지 않으므로 물체 간에는 차별이 없다. 자연, 즉 있는 그대로의 세계는 사유가 아니므로 아무 차별이 없다. 사유로의 차별상이 실상으로는 차별상 그대로가 차별이 없는 무등등無等等이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무등등.
정의 3. 실체란, 그 자체 안에 있으며 그 자체에 의하여 파악되는 것, 즉, 그것의 개념을 형성하기 위하여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T1000.0 : 스피노자의 실체는 책 전체에서 어떻게 쓰임을 보고 파악할 개념인데, 일단 정의에 따르자면 예컨대 나의 실체는 없다. 나는 무엇인가?라고 나의 실체를 묻는다면 몸이 나인가? 생각이 나인가? 등의 물음이 이어지는데 이는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함으로 나는 실체가 아니다.
정의 4. 속성屬性이란, 지성이 실체에 대하여 그것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서 지각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T1000.0 : 속성을 정의할 때 '지성', '지각'이란 말로 정의한다. 속성은 인식의 문제임을 드러내고 있다. 인식이 없다면 속성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지도 않을 것이다.
정의 5. 양태樣態란, 실체의 변용變容, 또는 다른 것 안에 있으면서 다른 것을 통해서 파악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T1000.0 : 양태란 실체의 변용인데 변용들의 차이에 의해서 파악된다. 감정에 있어 '기쁘다', '슬프다'는 정의에 따르면 실체가 변용된 양태들인데 둘다 실체의 변용으로서의 양태라는 점이 양태로서의 차이로 파악되어 양태가 드러난다.
정의 6. 신이란,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 즉 제각각 영원하고도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한 속성들로 이루어져 있는 실체라고 나는 이해한다.
해명: 나는 자기의 유(類) 안에서 무한하다고 말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무한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단지 자기의 유(類)안에서만 무한하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무한한 속성들을 부정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즉 우리는 그것의 본성에 속하지 않는 무한한 속성들을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무한하다면, 그것의 본질에는 본질을 표현하되 어떠한 부정도 포함하지 않는 모든 것이 속한다.
T1000.0 : 스피노자의 신은 실체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다. 스피노자는 기하학적 질서에서 신과 실체라는 개념을 새로운 용어로 배출해 내는데, 한편 그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지 않고 기존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의미는 재미삼아 말하자면 맨 몸으로 던저져 적군의 칼을 사용해 적군을 물리치는 검객과 같다고 할까. 책을 읽다보면 그 이유가 나오는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그때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정의6은 요컨대 신은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한 속성들로 이루어져 있는 실체라고 함은 '이루어져 있다'는 측면에서 자연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 내재해 있음을 본질로 한다. 신은 그대로 표현된 것이며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그렇다. 내가 보기에 스피노자의 신은 불교의 법신과 같은 개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에티카를 읽어보면 이해에도 도움이 되고 재밌다. 둘다 실체의 변용, 양태들로서의 사유의 차이가 있을 뿐이므로 차이를 즐기면 되기 때문이다. 마치 산을 오르는 여러 등산길처럼.
7.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하며,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행동하도록 결정되는 것을 우리는 '자유롭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정하고 결정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다른 것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을 우리는 '필연적'이라거나, 오히려 '강제된다'고 말한다.
T1000.0 : 흔히 자유는 두가지 길이 있다면 두가지 길 중에 하나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음을 자유라고 하는데, 여기 정의에 의하면 자유는 그것이 아니라 필연성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자유다. 즉 마음대로 하지 않는 것이 자유다. 그러나 이 자유는 '일정하고 결정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다른 것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필연적, 강제적으로 따르는 것과는 다른데, 예를 들어 나도 모르게 익혀진 말하자면 필연적으로, 강제적으로 익혀진 습속들에 의해 그렇게 하도록 하는대로 행동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다시말해 무의식적으로 강제된 필연적 행동들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자유는 자유가 아닌 것이다.
8. 영원성이란, 존재가 영원한 것의 정의로부터만 필연적으로 나온다고 생각되는 한에 있어서, 존재 그 자체라고 나는 이해한다.
해명: 왜냐하면 그와 같은 존재는, 사물의 본질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진리로 생각되며, 그런 이유로 지속이나 시간에 의해서는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그 지속을 처음도 끝도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T1000.0 : 영원성은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또 시간에 의해서 설명될 수 없는 것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정의를 빌자면 무시간성이 영원성이며 무시간성은 과거도 미래도 없는 현재. 오직 현재만을 사는 것이 무시간성을 사는 영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