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실재들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근본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p75)
만일 우리가 이러한 설명의 길을 따른다면, 우리는 우리가 결코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고 무수한 가능한 실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실재들 각각은 완전히 정당하며 타당합니다. 물론 바람직한 정도는 다를지라도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설명의 길을 따른다면, 우리는 우리의 주변 인간들의 복종을 요구할 수 없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일 것이고 협력과 소통을 추구할 것이며, 어떠한 상황 아래에서 우리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 타당하다고 간주하게 될 것인지를 찾아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떤 주장은 만일 그것이 실재의 적절한 영역의 타당화 기준들을 충족시킨다면 참될 것입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66)
마뚜라나 바로 그렇습니다. 오직 구분되는 것만이 존재합니다. 설령 그것이 우리 자신과 구분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구분의 작동을 통해 그것과 묶여 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구분할 때마다, 구분되는 실체는 그 구분의 의미를 갖는 어떤 배경과 함께 출현합니다. 구분되는 실체는 그것이 존재하는 영역을 산출합니다. 푀르크젠 좀 더 구체적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사례를 하나 들어줄 수 있나요? 마뚜라나 다음과 같은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어느 날 저녁 당신은 파티를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을 방문합니다. 몇몇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에 갑자기 누군가 당신의 어깨를 칩니다. 당신은 돌아서서 그가 수년 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라는 걸 알아차립니다. 당신은 말합니다. "아니 자네가 여기 웬일인..
그 누구도 나를 결정할 수 없다.그것은 불가능하다.천상천하유아독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