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습니다.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이라는 잘못된 개념은 다음과 같은 대안적인 생각에 의해 바로잡혀야 합니다. '살아 있는 존재에게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그것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외적 작용체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논평하는 관찰자의 시각에서, 살아 있는 존재가 속해 있는 섭동들(perturpations)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관찰자는, 그가 보기에, 체계에 충격을 가하고 그 안에서 (구조의 파괴에는 이르지 않고 그것의 조직을 유지하도록 허용하는) 구조적 변화들을 유발하는 어떤 실체(entity)를 지각합니다. 이 마주침의 형태를 나는 섭동이라고 부릅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그 체계가 자신의 정체성[동일성]을 잃고 붕괴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파괴적인 변화가 발생..
그러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려면 아주 많이 알아야야 되는데." 저는 김나지움 입학시험에 막 합격했기 때문에 "하지만 저는 아주 많이 알아요."라고 대답했지요. 그 말에 그는 저를 쳐다보면서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넌 네가 얼마나 옳은지를 모르잖아." 이 문장이 오늘날까지 저를 늘 따라 다녔습니다.비트겐슈타인이 무슨 뜻으로 그 말을 했다고 생각하시나요?아마 그는 어린 아이들이 스스로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아주 많은 기술과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말하고, 걷고, 춤추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만 스스로에게 분명하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음을 알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지요.(발명품 205)2.라파엘로처럼 그리기 위해 4년이 걸렸다. 그러..
위에서 서술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계기들을 단지 조작하는 조종사들에게 이른바 지식의 한계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오직 관찰자만이 한계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들 자신의 영역들에, 그리고 조종실의 내적인 작동 동학의 영역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중보기를 사용해야 하고, 조종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과 외부 세계의 상황들을 비교해서 서로 다른 영역에서 본 것을 그들 자신에 의해 생성된 또 다른 영역 속에 관련지어야 합니다. 관찰자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이중보기의 결과입니다. (함으로 102)
다시 한 번 나는 내 견해를 유아론적으로 바라보는 이 분류(법)을 거부하지 않을 수 없군요. 다시 말해둡니다. 나는 관찰자이며,외부 세계의 체험을 결코 부인하지 않으며, 공통적인 담론의 체험과 다른 사람들의 존재에 대한 체험을 부인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말입니그러나 나는 신경체계의 작동들이 이 외부 세계와 그 특징들에 어떠한 의미 있는 방식으로 관련될 수 있다거나 또는 그 작동들이 그러한 특징들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는 것에는 힘주어 반대합니다. 신경체계는 폐쇄적인 체계로서 작동합니다. 즉, 신경체계는 활동의 신경 상태들 사이의 또 다른 변화하는 관계들을 끊임없이 낳는 활동의 신경상태들 사이의 변화하는 관계들의 폐쇄적인 체계로서 작동합니다. 하나의 체계로서의 그것의 작동에는, 그 자신의 내적인 상태들 외에는..
그렇다면 색채란 무엇입니까?그것은 외부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외부의 빛의 원천에 의해 단지 풀려나오는) 유기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입니다. 색채란 우리가 보는 것이며, 우리가 체험하는 것입니다. 색채 명칭은 어떤 상황들에 처한 개인의 특별한 체험과 관계된 것으로서, 빛의 주어진 분광 조성과 독립되어 있습니다. 나의 접근법은 신경체계의 활동을 신경체계의 활동과 비교하는 것이었습니다. 신경체계의 활동을 그 자체와 관련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폐쇄된 체계로 간주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초점을 맞추었던 것은 내적인 상호관계들이었습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96)2.이런 종류의 실험들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이것들은 우리의 경험이 우리의 구조와 뗄 수 없게 얽..
오온
내가 지은 인연의 총체, 마음.일체유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