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논문 의 말미에서 선생님은 과학자는 자신의 작업이 가져올 결론들 - 요컨대 그러한 작업의 윤리적인 또는 비윤리적인 결론들 - 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또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학이 선생님에게는 가치중립적인 활동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할 텐데요. 당연히 많은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연구하는 대상과 자신들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런 견해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과학은 객관적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주체의존적인 지식의 영역이며, '그 아는 사람'의 자질들을 규정하는 방법론에 의해 규정되고 한정됩니다. 순수 과학은 우리에게 말을 하지 못합니다. 자신들의 의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객관적으로 주어..
나는 차라리, 내가 언제나 근본적인 질문들의 전체 집합의 주변에서 작업하고 있었다고 말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겨우 아이였을 때 나는 이미 삶과 죽음을 이해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들은 내가 학생이었을 때, 그리고 실험실에서 작업했을 때 나의 끊임없는 동반자들이었고, 보다 철저한 성찰을 탐색할 수 있도록 고무했습니다. 나는 어떤 전제를 낳는 원인들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떤 과정들이 하나의 특별한 실체를 구성하는가? 내 질문들 중의 하나를 푸는 올바른 대답을 찾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왜 어떤 견해는 나에게 호소력을 갖고, 다른 견해는 그렇지 못한가?' (함으로 308)
철학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의 토대들에 대해 성찰한다는 것을 뜻한다는 게 내 주장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하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철학적 사상가라고 부르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정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대답을 탐색하면서 나는 과학자로서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나는 체험을 내 방침으로 사용하고 과학 이론들을 구상합니다. 당신이 내 작업에서 발견하는 것은 실제로는 철학적 물음들과 과학적 대답들의 혼합물입니다. 내가 볼 때 이것은 올바른 관찰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만일 적합한 호칭을 선택하는 게 문제라면, 나는 내 자신을 분리된 상이한 두 영역들 - 체계의 내적 동학의 영역과 그러한 체계의 상호작용들의 영역 - 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생물학자라고..
1. 선생님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철학자로 평가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과학자로 평가하는 것이 좋은지 계속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방금 암시했습니다. 선생님의 생각들을 분류하는 것과 관련되는 이 불안은 다음과 같은 짧은 일하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선생님 연구소의 게시판에는 수년 동안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신경생물학 연구소', 그 다음에는 '실험 인식론'이 적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혼성적 표혀인 '신경철학'이 등장했습니다. 이렇게 질문해 보겠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을 어떻게 서술하겠습니까? 아마도 과학과 철학의 분리 이전의 시기로 되돌아간 - 오늘날의 지식으로 무장한 - 인간주의 철학자라고 가장 잘 특징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갈릴레오가 과학으로부터 철학을 분리시켰을 때, (내가 말하고자 ..
그래도 동료들과 친구들의 비판이나 당황한 시선들에 한 번도 화가 나지 않았습니까? 내가 1년 전에 칠레의 산티아고에 있는 선생님의 실험실에 처음 나타났을 때, 다음과 같은 무언가 매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선생님에게 전화가 걸려 와서 우리의 대화를 중단해야 했을 때마다, 선생님의 동료들 중의 한 명이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여기에서 시간낭비하고 있는 거야. 중요한 건 사실들이야. 관찰자는 잊어버리라고." (웃음) 누굴 얘기하는지 알겠군요. 글쎄 그렇다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내 견해들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내 견해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들을 논박할 수도 없습니다. 때때로 비평가들은 내가 정말로 철학자, 시인, 신비주의자라고 말합니다. 뭐 그..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쁜 것은 아니었답니다. 나는 첫 논문을 하인쯔 폰 푀르스테르에게 직접 보냈고, 그의 도움으로 그 논문은 1975년 지에 실려 간행되었습니다. 분명 몰이해의 국면이 있었지만 그것이 나에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자기 생산에 대하여 처음으로 '생물학 협회'에서 강연을 하고 내 생각을 상세하게 제시했을 때, 한 친구가 나중에 내게로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마뚜라나, 뭐가 문제야? 어디 아파? 수많은 과학자들이 내가 제시한 것에 어떠한 직접적인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나한테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 작업에 대한 비판적 논평들은 언제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반대들과 주장들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증..
어떻습니까? 피노체트는 선생님이 얘기한 것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그는 나를 더할 나위 없이 잘 이해했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내가 그를 상관[우월한 사람]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동등한 칠레인으로 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대통력이었고, 우리와 동행했으며, 이 나라의 지적 자유와 문화적 자율을 지키는 이 원대한 임무에 기여해야 했습니다. 그는 우리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욕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절대로 말입니다. 선생님은 통치자와 그 국민들 사이의 관계를 재해석했군요.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나는 그가 건배하면서 썼던 말들을 사용했습니다. 나 역시 우리의 공통의 조국을 위해 건배했던 것입니다. 이건 매우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
내가 '인지생물학'이라는 제목의 연속강의들을 생각해 냈던 때는 아직 1973년이었고, 이 강의가 나중에 가 되었습니다. 나는 매년 이 강의들을 했고, 단일 세포에서 사회로 이르는 길을 서술했습니다. 나는 어떠한 직접적인 방식으로도 정부를 공격하거나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한 공개적인 운동을 하지 않으려고 주의했습니다. 그것은 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절대로 내 학생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가도록 재촉하지 않고 성찰을 위한 자신들의 역량을 한걸음 한 걸음 발전시키기를 바랐습니다. (함으로 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