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님은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 읽은 경전에는 부처님의 일생 중 열반에 드시기 전 마지막 부처님의 모습이 자세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 나이로 팔십 평생을 마치셨습니다. 이것은 29세에 큰 뜻을 세우고 출가한 후 51년 동안의 수행생활을 마친 것이기도 하고, 또한 성도 후 45년 동안의 교화의 일정을 모두 마친 것이기도 합니다. 그 위대한 삶에 비해서는 그 마지막 모습이 어찌 보면 초라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평범하게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장례에 대해 부처님이 남기신 말씀 아난다가 장례는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부처님께 여쭙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수행자들은 장례 따위는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신심 있..
바다라는 큰 틀에서 바라보면 파도는 다만 출렁거릴 뿐, 생겨난다고 해도 생긴 것이 아니요, 없어진다고 해도 없어진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생멸을 꿰뚫어보면 불생불멸의 이치를 알게 됩니다. 불생불멸이라는 것이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공부를 잘못햐면 부처님의 근본 교설에서는 무상함을 가르치는데 반야심경에서는 불생불멸한다고 하니까 헷갈리는 사람도 있어요.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고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잖아요. 얼음 따로 보고 물 따로 보면 얼음이 없어지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지만 물까지 같이 보면 다만 변화할 뿐 생기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불생불멸이란 말이 곧 무상하다는 개념입니다. (행복 전하기 182)
1. 생명체계들이 '구조적으로 결정된' 체계들이라는 가정은 '관찰자와 독립되어 있는' 실재와는 하등의 관계도 없습니다. 그것은 관찰자들이 체험할 수도 있는 정합성들로부터 귀결하는 하나의 추상물입니다. 추상한다는 것은 어떤 과정의 규칙성을 포착한다는 것이고, 연관된 현실적이 요소들에 주의하지 않고 그것을 정식화하는 것입니다. 체계의 구조적 결정론을 논의할 때마다 나는 존재적 또는 존재론적 사실들 또는 어떤 진리를 서술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단지 관찰자로서의 나의 체험들로부터 어떤 추상물을 제시할 뿐입니다. (함으로 111) 2. 가령 주사위를 들고서 모서리와 평면을 관찰해 보세요. 주사위라는 상수(변하지 않는 모습)를 산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대답은 '움직임(운동)과 그 때 생겨나는 관점에 따..
알렉산더 포프의 다음 말은 이런 사실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사람을 가르칠 때는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 가르치고, 새로운 사실을 제안할 때는 마치 그 사람이 잊어버렸던 것을 우연히 다시 생각하게 된 것처럼 제안하라. 약 3백여 년 전에 갈릴레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남을 가르칠 수는 없고 단지 그가 스스로 발견하도록 도와 줄 수 있을 뿐이다. (인간관계론 197) 2. 모든 체계들이 구조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하나의 외적 작용체는 체계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변화는 섭동하는 작용체에 의해 유발되지만 섭동 체계의 구조에 의해 결정됩니다.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은 불가능합니다. (함으로 138)
1. 세상에는 큰 것도 없고 작은 것도 없고, 큰 일도 없고 작은 일도 없다. 다만 내 보기에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큰 일도 있고 작은 일도 있다. 내가 보기에, 내가 만들고 있다. 내가 나의 세상을, 또 너는 너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또 우리가 우리의... 내가 만들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나에게 있다. 책임을 의식하는 건, 윤리학이다. 또 미학이다. 2. 도덕경 1장의 무명과 유명 사이에 '내'[기준]가 있다. 내가 보기에. 3.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내가 만드는 세상이 둘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내가 만드는 세상이고, 내가 만드는 세상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다. 내가 사는 세상, 내가 책임지는 세상을 아름답게.
0. 내 말은 그 뜻이 아닌데 상대가 오해할 경우. 내 말은 신호에 불과하며 상대는 자신의 입장에서 그렇게 해석[정보화]한다. 내 말이 전하려는 바가 전달되게 하는 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이해를 유발 할 수 있을 뿐 결정할 수는 없다. 신호를 정보로 의미화하는 것은 청자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내 말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이 매번 실패하는 이유는 그 의미를 내가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화 중에 상대가 그렇게 들었다면 그대로 인정하자. 만일 그건 잘못 들은 거라고 지적하면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생겨나는데 대화를 대화가 아닌 논쟁으로 몰고갈 여지가 크다. 무엇보다 기분이 상하고 후회를 만드는 부작용이 크다. 내 경험] 1. 정보는 신호를 가지고서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서 생..
1. 의 모든 길은 내재성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내재성은 무의식 그 자체이며, 무의식의 정복이다. 윤리학적 기쁨은 사변적 긍정의 상응개념이다. (스피노자의 철학 47) 2. 그래서 흔히 "알긴 아는데 행동은 잘 안된다"라고 말합니다. 이때 이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이른바 우리의 카르마, 업식으로부터 작용합니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내일 아침에 일찍 좀 깨워 달라고 해놓고는, 깨우면 졸리니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다가 나중에 일어나서는 왜 안 깨웠냐고 원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나온 말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아 한 말입니다. 거의 반은 잠꼬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경계에 부딪히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수행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무의식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