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보면 정신적인 건강함이라는 말도 변형되는군요. 이제 정신분열증을 보이는 사람이 과도하게 상상된 현실에서 벗어나느냐 그렇지 못하냐라는 질문 대신에 그 사람의 현실표상이 다른 사람들의 현실표상에 비해 고통이 심히고 불쾌한지 아니면 편안한지를 묻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군요. 맞습니다. 메뉴판이 야채수프에 비해서 그렇게 맛이 있지 않다는 점에 우리 모두의 의견이 일치할 수는 있을 겁니다. 메뉴판이라는 지도는 맛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야채스프라는 지도는 그냥 그대로 즐길만한 것이지요. 정신분열을 특징짓기 위해서 사용되는 분별들은 이런 식으로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옮겨 갑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린 그런 식의 두 가지 표상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우리 머릿 속에 있는 두 가지..
수지, 조지, 로저, 알반, 루이즈에게 엽서를 보내주어서 고맙다. 모두들 잘 지내는가? 많이 먹고, 열심히 수행하는가? 엽서에서 그대들은 "모두들 좋은 시간을 보내기를 기원한다"라고 말했다. 고맙다.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많이 먹고, 많이 떠들고, 많이들 찾아오고. 이 세상은 정말 재미있다. 참된 본질의 차원에서는 나타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삶과 죽음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재미있다. 본질적으로는 더러운 것도 없고 순수한 것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쁘며, 어떤 것은 깨끗하고 어떤 것은 더럽다고 말한다. 또 본질적으로는 증가하는 것도 감소하는 것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원을 그리고 사각형을 그린다. 그래서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
우리가 원칙적인 모름과 친숙해지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깊은 의미에서 볼 때 기적과 같은 많은 현상들을 설명해 낼 처지에 있지 않으니까 기적 등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기적이 생기게 내버려 두라는 것이 저의 제안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앎이라고 하는 것은 제가 볼 때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수면 위로 나와 있는 한 조각 얼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반면 우리의 모름은 대양의 깊은 곳까지 닿아 있지요. (발명품 97) T. 모름과 무지의 구분. 우리는 의식이나 감각에 있어 원인들의 질서를 모른채 의식하고 보고 있다. 이 모름이 무지가 아니라 이 모름을 목적원인으로 대체하는, 즉 결과를 원인으로 대체하는 전도몽상이 무지다. 이 구분에 주의를 기울이면 이 모름은 설명할 ..
욕망의 흐름이 때론 식욕으로 때론 성욕으로 흐른다. 하나의 흐름에서 차이를 구분할 뿐. 구분한다는 점에서 욕망의 흐름은 앎의 흐름이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어떻게 아는가? 스피노자식으로 신체 변용의 관념을 통해 안다. 우리는 오직 이렇게 알아차린다. 욕구와 앎이 상호작용하여 욕망을 알아차린다. 이 욕망과 앎의 상호작용은 끊임없는 자기 순환으로 계절들의 변화처럼 무상하다. 변이만이 있을 뿐이다. 욕망, 이 앎은 마뚜라나의 개념인 구조적 결정론에 입각해 있다. 외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유발할 뿐 결정할 순 없다. 외부의 실체는 없으며 욕망하는 작용만이 있을 뿐이다. [실체가 없으니 결정하지 못한다. 유발만] 허나 욕망의 작용에는 외부도 내부도 없다. 하나의 흐름만이 변이만이 있을 뿐이다. 변이만이 있..
T. 이해를 체험함에 있어 '화자가 아니라 청자가 (화자에 의해 행해진) 진술의 의미를 규정한다'는 원리는 구조적 결정론과 일치한다. 화자는 유발할 수 있으나 이해를 결정할 순 없다. "보통 사람들은 화자가 어떤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하고 청자는 화자가 말한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아주 근본적인 잘못입니다. 저나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기묘한 소리를 해석하여 그 소리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청자입니다." 청자의 이해는 구조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이해에 있어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은 불가능하다. 1. 이 예를 해석하자면, 이해와 파악은 어떤 사람이 자신이 속한 문화나 유산에 기반하여 이미 알고 있고 기대하고 있는 것과 말해진 것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
정보는 신호를 가지고서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서 생겨납니다. 제 생각에 정보란 지각하는 의식 밖에 존재하는 사용대상이 아닙니다. 책, 신문, 녹음테이프, 비디오테이프, 교통표지판 등은 그러니까 정보를 갖고 있지 않고 다만 잠재적인 정보의 운반자일 뿐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구분입니다.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은 단지 흰 종이 위에 있는 기묘한 닭발들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은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냥 있는 그대로 입니다. 이는 특정한 교통표지판을 보거나 붉은 신호등을 보더라도 우리가 운전면허증을 딴 사람이라야 우리에게 그 신호들이 브레이크를 밟고, 중립기어를 놓고 차를 세우게 만드는 정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신호를 정보로 바꾸는 것은 다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