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멸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이 마음에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왜 생멸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마음에 의지하여[依心]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의지한 생멸이기에 생멸이 마음과 다른 것일 수도 없고, 마음의 알아차림과 기억이 진여도 되면서 생멸도 되기에 생멸이 의지할 마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 하나에 진여와 생멸이 함께 있으니 일어나는 마음마다 진여이면서 생멸일 수 밖에 없습니다. T1000.0 : 모든 것을 마음이 만드니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마음이고 머묾지 않고 마음을 내는 것도 마음. 모든 것이 마음인데 마음이 짓는 생멸속에서 불생불멸을 바로 볼때, 있는 그대로의 진여를 바로 볼때 생멸이 진여로 보인다. 이 역시 마음.[단 이때의 마음은 空이다. 청정하다.] 그러므로 의..
만들어진 분별과 기억인 망념에 물든 마음 작용이 생멸심이라고 한다면, 현재에 대한 분명한 알아차림과 새로운 기억으로 미래를 창조하는 마음작용은 진여심입니다. 인연의 흐름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머묾 없는 마음은 인연이 만든 분별을 새롭게 알아차리므로 기억된 분별이라고 하더라도 상속된 기억만이 아니며, 기억에 의해 다음 찰나의 분별이 새로운 분별임을 알아차릴 수 있으므로 기억으로 남으면서도 새로움을 창조합니다. 머묾 없는 알아차림과 기억이 한 찰나의 두 가지 마음작용처럼 있으면서 창조적인 마음 활동을 일으키는 동력입니다. 기억이면서 머묾 없는 분별이며, 머묾 없는 분별이 기억으로 머물기에 지성의 작용은 '머묾'도 없으며 '머묾지 않음'도 없습니다. 만일 알아차림과 분별, 그리고 기억이 없다고 하면 마음이라고..
1. 자량위-가행위-견도위-수습위-구경위 성소작지/묘찰관지/평등성지/대원경지 견도위에서 묘찰관지와 평등성지가 구경위에서 성소작지와 대원경지가 이뤄진다. 2. 망념에 물들었다는 것은 망념의 습관이 강하다는 정도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망념이 본래 없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 습관이 된 망념의 관성을 완벽하게 지우지 못하면 궁극의 깨달음이 아닙니다. 자성이 없는 것을 아는 것을 해오解悟라고 하고, 망념의 관성 곧 잘못된 분별 인식에 젖은 흔적을 온전히 제거했을 때를 증오證悟라고 하는데, 증오를 성취하여야만 진정한 깨달음입니다. 시각始覺으로 미세한 망념의 흔적을 지우고 날 때 비로소 연기의 각성을 볼수 있고, 본각을 체득한 증오가 되어야 자성 없는 연기 공성의 지혜와 무량한 자비 방편을 실전할 수 있는 지혜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