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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상에, 상에 집착하는 것은 상은 본래 내 마음이 일으키는 것인데 내 밖에 별도의 실체가 있다고 상을 모양짓고 집착하는 것인데, 하여 상이 본래 존재[대상]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 존재가 집착할래야 집착할 것이 없는 공임을 알아 붙잡지 않을 것인데, 허공을 누가 붙잡으려 하겠나, 무상을.
2. 상이 본래 없으니 집착할 바가 없고 또 내 마음이 짓는 그 상은 따로 고집할 바가 없으니 시간과 공간이 조화를 이루도록 인연을 따라 이룰 것인데.
3. 인연을 따라 욕망이 생기고 욕망의 부단한 과정이 인연을 새롭게 변화시키며...
이 모든 변화의 역사[無常]가 바로 무상[無相], 상이 없기 때문이다. 상이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온갖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4. 상에 집착하지 않을 순 있어도 상이 지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 않나. 이유는 상을 마음이 짓는다하는데 마음이란 스피노자의 따르면 신체를 대상으로하는 신체의 관념이고 외부 대상의 상이란 그것과 맞딱드려 변용된 신체의 관념, 마음이기 때문인데 이때 마음은 외부 대상의 본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즉 있는 그대로 보려함 없이 자신을 기준으로 대상을 표상해 인식하는 것을 마음이 상을 짓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이는 본성상 이기적이다. 이는 필연성에 의해 본래 그런 것이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1
5. 따라서 우리는 상을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일체유심조]이며 또 그 상이 본래 없는 것임을 알아 집착하지 않는 존재[일체개공]인 것은 마음과 몸이 둘이 아닌 하나이기 때문이다. 밖이 아니라 내 안을 돌아봐 둘이 아닌 하나로, <몸은 공하고 마음은 상을 짓고>에서 <몸은 공하고 마음은 상에 집착하지 않고[空=無相]>로 나아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령 마음이 짓는다는 서방정토를 마음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공한 몸 자체로 지어낼 순 없는 것일까? <있는 그대로의 서방정토> 이또한 또하나의 상을 짓는 것일까? 아무 괴로움 없이 그러한 욕망을 중단하지 않고 다만 할 뿐이면 그 과정속에서 반드시 그 나라가 펼쳐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옥의 배치를 천국의 배치로 탈영토화한 아미타불이 그러하듯]
- "요컨대 우리가 사물들을 인식하는 조건들과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의식을 갖는 조건들 때문에 우리는 부적합한 관념들, 혼란스럽고 절단된 관념들, 즉 자신들과의 고유한 관계들로부터 분리된 결과들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들뢰즈, <스피노자의 철학> p 3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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