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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어떻게 의심하는가?"
"일체 중생이 다 두가지 몸이 있사오니 육신과 법신이 그것입니다. 육신은 덧없는 것이어서 태어남이 있고 죽음이 있지만, 법신은 영원하여 태어남도 없고 깨달음도 없는 것이어늘 경에 말씀하시기를 <나고 죽음 멸하여 다하고 나면 적멸이 낙이 된다>하셨으니 그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떤 몸이 적멸하며 어떤 몸이 낙을 받는 것입니까. 만약 육신이라고 하면 육신이 죽을 때 네 가지 요소가 흩어져서 전혀 괴로울 뿐이니 괴로움을 낙이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약 법신이라면 적멸하여 곧 초목이나 흙 바위와 같은 것인데 누가 낙을 받을수 있는 것입니까? 또 법의 성품은 나고 죽는 본체요, 오온은 나고 죽는 작용입니다. 한 본체와 다섯 가지 작용이 나고 죽는 이것이 떳떳하여 나는 것은 본체로부터 작용을 일으킴이요, 죽는 것은 작용을 포섭하여 본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난다는 것은 곧 중생의 생존행태가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요, 만약 다시 나지 않는다고 하면 곧 기리 적멸한 곳에서 돌아가서 물질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체의 모든 법이 열반에 묶여서 오히려 태어남을 얻지 못하는 것인데 무슨 낙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네가 부처님의 제자로서 어찌 외도의 단상, 그릇된 견해를 익혀서 최상승법을 논의하려 하는가. 네 말대로라면 곧 육신 밖에 따로 법신이 있고, 생멸을 떠나서 적멸을 구하며, 또 열반의 즐거움도 몸이 있어서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생사에 집착하고 아껴서 세간의 즐거움을 탐하는 것이다. 너는 이제 마땅히 알라. 부처님은 어리석은 모든 사람을 위해 오온의 얽힘을 자기 모습으로 삼고, 일체법을 분별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온의 얽힘을 자기 참모습으로 생각하며 일체법을 분별하여 바깥 경계의 객관을 삼아서 삶을 좋아하며 죽음을 싫어하고 생각생각에 흘러 움직이는 것이니라. 그래서 꿈이요, 환상이요, 거짓임을 모르고 잘못 윤회를 받아서 즐거운 열반을 오히려 괴로움으로 삼기 때문에 날마다 밖으로 달리어 찾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에 열반의 참 즐거움은 순간에도 생겨나는 모습이나 없어지는 모습이 없어서 다시 생멸을 없이 할 것도 없는 이것이 곧 적멸이 드러난 것임을 보이셨느니라. 또한 앞에 나타난다는 헤아림도 없는 이것이 <항상 즐거운 것>이니라.
이 낙은 받는 자도 없고 또 한 받지 않는 자도 없는데 어찌 한 본체에 다섯 가지 자굥이라는 이름이 있으며, 또한 하물며 열반이 모든 법을 구속하여 길이 나지 않게 한다고 말할수 있겠는가. 이는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요. 헐뜯는 것이다. 이제 게송을 들으라."
위없는 대열반이여
둥글고 밝아 항상 비치거늘
범부는 죽는다 말하고
외도는 단멸이라 집착하며
이승 찾는 모든 사람들은
하는 것 없음을 내세우네.
모두 다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
육십이견의 근본일쎄
망녕되게 세운 헛된 이름
어찌 참된 뜻이 있을까?
헤아림을 초월한 사람이라야
얻고 버림 없음 통달하여
다섯가지 요소로 얽히고 모인 법,
얽히고 모인 그 가운데에서 나와
밖으로 드러낸 모든 모습과
하나하나의 소리, 말, 현상이
모두 다 꿈이요, 환상인 줄 아네.
범부니 소견이니 하는 견해 나지 않고
열반이란 생각 또한 없으니
이변과 삼제가 모두 끊어져
근기에 따라서 항상 쓰지만
쓴다는 생각 나지 않네
일체의 모든 법 분별하지만
분별 한다는 생각이 도무지 없고
겁화가 일매 바다가 마르고
산과 산을 맞부딪치는 바람이 불어도
참되고 항상한 적멸의 즐거움.
열반의 참모습과 같네.
나 이제 굳이 말을 하여
너로 하여금 그릇된 견해 버리게 하노니
네가 말을 따라 아는바 없으면
조금 알았다 허락하리라
<항상 즐거운 것> 여행이 곧 목적지.
스님들이, 순간의 쾌락을 멀리한 채 적멸의 더 없는 행복을 추구하는 이유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지복을 구하는 이유는, 그 복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맹세코 물러섬이 없는 지복을 향한 욕망의 내재적 과정이 중단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행복은 복리로 불어나는 워렌버핏의 재산처럼 불어나 있을 것이며, 그 이상이 될 것이다. 금강경에서 부처님이 말하는 공덕이 어마어마어마하듯이. 지복을 성취하기 위해선 복리처럼 물러섬이 없어야한다. 공덕을 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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