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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쉬고 언어도 쉬었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緣起的 虛忘分別이 보인다. 허망분별하니까 사는 것이 너무너무 허망한 듯 보이지만 그 허망분별이 보일때 비로소 온전한 생명활동을 하는 것이다. 왜 완벽한 깨달음을 이룬 후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허망분별이다. 허망분별은 원성실성 다음에 나온다. 순서를 말할때 변계소집성을 말하고 의타기성을 말하고 원성실성을 말하는데 실재로 살면서 허망분별이 완벽하니 이해되어 있고, 이해될 뿐 아니라 허망분별을 철저히 사는 때는 원성실성을 완전히 경험하고 나서일 때이다. 그것의 의미는 허망분별해야 부처님께서도 일체 인연처에서도 자기 삶을 고집하지 않고 망향관계에서 연기법을 드러내서 삶을 안온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만약 부처님께 삶에 자기 특성이 있어서 자기 특성이 있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과 만나는 과정에서 자기 삶을 주장하게 되면 두 관계의 삶속에서 삶이 함께 이뤄지고 있는 연기적 장이 해소되는 것이다. 즉 내가 보이는데로 내 얼굴대로 살아라하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원성실성도 아니고 허망분별도 아니다. 삶이 허망분별일때야 완벽하니 후득지를 체험한다. 허망분별은 후득지를 실천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원성실성은 근본지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근본의 삶에 들어서 아와 법이라고 하는 것이 언어가 지칭하고 있는 것처럼 존립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완벽하게 알고나서 일체 모든 것에서 자기 특성을 고집하지 않음으로 어울림의 삶을 나투는 것을 허망분별이라고 한다. 우주법계는 한번도 자기 모습을 고집하지 않고 어울림의 삶을 나투고 있다. 그것이 제팔식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근본 삶의 실상이다."[각주:1]

 

mlwlab: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는다. 옳다고 생각하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으며 오직 어울림의 삶을 나투므로서

연기적 장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생각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왜 그런가?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며 더 중요하게는 그 침묵이 모색하는 것, 드러내주는 것, 보여주는 것은 바로 어울림의 삶이었던 것이다. "우주 법계는 한번도 자기 모습을 고집하지 않고 어울림의 삶을 나투고 있다."   

 

 

 

 

  1. 정화스님 <유식강의> 녹취록에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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