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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때에 사랑과, 감정들의 힘을 다루는 선생님의 성찰들은 언제나, 공정하지 못한 비약을 포함하는 것 같습니다. 자연과학의 사실들과 논증들로부터 실천 분야들에 적용되는 시적 서술들로,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특징화에서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하는 특징화로, 인식론에서 윤리학으로 넘어가는 비약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바꾸고 있습니다.

옳지 않습니다. 생물학은 우리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생물학자로서, 그리하여 과학자로서, 나는 누구에게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줄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오해일 것입니다. 사실상, 어떤 것도 좋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사물들은 그저 사물들일 뿐입니다. 좋다 또는 나쁘다와 같은 평가들과 구분들이 발생하는 것은, 오로지 특정한 종류의 -예컨대 우리의 특별한 선호가 걸려 있는 경우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거부하는 바로 이 인간 영역에서일 뿐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나는 어떠한 추천도 하지 않지만, 예컨대 게놈을 조작하면 괴물들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물학자로서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게놈 조작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내가 행위의 특수한 과정에 기인하는 결과들을 서술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그 다음에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겠지요.(함으로 335)

특정한 서술 양식이 당파적 견해와 간접적인 옹호를 포함하지 않나요?

아닙니다. 아마도 사람들의 수용 여부는 그들 자신의 가치들과 준거들의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보이고 있는지 간단히 지각하는 것은 분명 어렵습니다. (335)

T.

수용여부는 그들의 문제. 아무도 수용을 결정할 수 없다. 그들은 나의 말을 듣고 선택할 것이고 그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이고 내 책임은 나의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이지 그들의 선택을 책임질 수 없는 게 원리이다. 나는 남들의 선택을 유발할 수 있으나 결정할 수는 없다.

2.

하지만 사랑의 개념이 이미 긍정적인 가치평가와 연결되어 있는 것 아닌가요? 사랑이라는 말은 듣기가 너무나 좋거든요. 바른 마음을 가지고는 누구도 공개적으로 착취와 독재를 장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 내가 가치평가와 서술 사이의 구분을 분명하게 유지하고자 원한다면, 내가 해야 하는 것이란 가능한 한 분명하고 정확하게 주장하는 것이고 내가 의미하는 것을, 그리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꼼꼼하게 진술하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정당한 상대방으로서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행위를 관찰할 때마다, 나는 넘(Num) - 새롭고 부담 없는 언어 - 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사람들은 아마도 나에게 내가 왜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는지 물어볼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와 같이, 이러한 종류의 행위에 대해, 그리고 관계들의 흐름 속에서의 이러한 자취에 대해 사용할 수 있는 공통의 개념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나는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싶습니다. 나는 무엇이건 사랑을 장려할 의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정말로, 사랑이 없다면 사회현상들은 있을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함으로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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