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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이 없는 사회 고찰

T1000.0 2021. 10. 8. 20:21


1.

스피노자가 보여주고 있듯이, 모든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복종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류, 공로와 과실, 선과 악 등은 복종과 불복종에 관련된 단지 사회적인 개념일 뿐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사회는 사유 능력을 복종의 의무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사회, 오직 행위에만 적용되는 국가의 규칙에 그것을 종속시키지 않는 것을 자신의 고유한 이해로 삼는 사회일 것이다. 사유가 자유로운, 따라서 생동적인 한, 그 어느 것도 위태로워지지 않는다. 사유가 그렇지 못하게 될 때, 모든 종류의 다른 억압들 또한 가능해지며, 그것들은 이미 실현되어, 어떤 행위라도 유죄가 되고 모든 삶이 위협받게 된다. (스피노자의 철학 10)

2.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 그리고 공동체의 자유을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유가 증대될수록 선택의 가능성도 증대되고 또 자신의 행위에 책임질 기회도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책임은 함께 있습니다. 자유로운 사람, 그래서 항상 다르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책임감 있게 행위 할 수 있습니다. 누가 다른 이의 자유를 빼앗고 축소시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사람의 자유와 더불어 책임감 있게 행위할 기회를 빼앗는 것입니다. 그런 행위는 그 자체로 책임감이 없는 행위입니다.

그렇지만 누구의 가능성이 증대되어야 합니까? 예를 들어 악의적 선동을 확산시키는 선동가의 기회를 보장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목표가 될 수 없지요.

왜 안 됩니까? 그런 선동가의 책을 도서관에서 꺼내서 버리고 금지해야 합니까, 그것이 내 견해에 일치하지 않는다고? 그런 대안은 살인적입니다. 선택의 가능성이 확장되게 되면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아동살인자가 될지 아니면 학교 버스 운전자가 될지. 이 길 아니면 저 길을 결정하는 것은 책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물론 어떤 것을 금지함으로써 짐을 벗을 수 있다면 편안할 것이고 혹은 어떤 상황, 유전적 요인, 교육, 본성, 부모 탓을 하면 편할 것입니다. 또 어떤 위계질서 뒤로 숨어서 어느 날 전쟁이 끝이 나고 재판에 나와서 "난 그저 명령을 따랐고 수행했을 뿐입니다. 나는 책임이 없습니다. 다른 가능성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면 편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발명품 54)

3.

당신은 선이나 참, 미 등이 계몽을 통해서 관철될 수 있다고 여깁니까?

당신은 이런 영역에 상당히 조예가 깊은 것 같군요. 그런데 무엇이 선이고 참이고 미인지 당신은 어떻게 알지요? 그러한 앎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요? 참과 거짓, 선과 악, 미와 추를 그렇게 절대적으로 나눔으로써 얻게 되는 결과는 사람들이 자신을 재판관으로 승격시키게 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모든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영원한 정의로 파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윤리적 상대주의를 옹호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윤리적 상대주의가 논의의 결과는 아닙니다. 저는 다만 소위 보편적 절대적 타당성을 소유하고 있는 그러한 분별들이 당신에 의해서 행해졌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런 분별들은 결코 당신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런 분별들의 관철에 따른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발명품 56)

4.
우리의 체계는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이 불가능함에도 지시명령적 상호관계는 권력관계, 이해관계이다. 복종.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의 불가능성의 역행 '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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