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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동자승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예전에 스승님께서 제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저에게 오계를 내리시고 저의 법명을 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름은 곧 내가 아니요, 나는 바로 저 공空이다.'하십니다. 공이란 곧 형체도 없는 것이니, 이름이 있다 한들 장차 어디에 쓰리까. 법명을 돌려 드리고 싶사옵니다."
"너는 그 이름을 공순히 받았다가 고이 돌려보내라. 내가 육십 년 동안 세상을 살펴보니, 어떤 사물이든 머물러 있는 것이 없고 모두가 도도하게 흘러가더라. 해와 달도 가고 가서 그 둥근 바퀴를 멈추지 않으니, 내일의 해는 오늘의 해가 아니다.
그러므로 '미리헤아리는 것'은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요, '붙잡아 두는 것'은 '억지로 애쓰는 것'이요, '돌려보내는 것'은 공순히 따르는 것'이니라. 너는 심기가 한곳에 머물거나 막히지 않도록 하여라. 명을 공순히 따라 명에 비추어 자신을 살펴보며, 이치에 따라 돌려보내고 이치에 비추어 살펴본다면,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는 곳에 강물이 흐를 것이요, 흰구름이 피어날 것이다."
연암 박지원 문학선집 <지금 조선의 시를 써라> '공을 보아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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