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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과 대답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부처님께서 쓰고 있는 '자연업自然業'이라는 말입니다. 자연自然은 지나온 시대의 모든 언어를 다 담고 있으면서도 언어를 무상한 인연으로 새롭게 창조하고 있는 흐름입니다. 과거가 현재에서 읽히고, 시간의 길이를 잴 수 있는 것이 그 증거가 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는 데서 보면 늘 현재로 시간의 폭이 있을 수 없지요.그러나 시간은 늘 현재의 자기 시간을 인연으로 읽고 있으면서 그 시간 속에 과거를 담고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시간의 폭이 되어, 현재는 삼세三世를 다 담는 현재가 됩니다.
언어도 시간처럼 현재에서 과거를 드러내지만 과거에나 머물지 않고 현재를 재창조하는 인연의 흐름으로 있을 때 인연의 저편에 있는 언어가 아니라 인연의 얼굴이 됩니다. 자연의 언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수학조차도 스스로 자기 변주를 하면서 자연을 해석하고, 해석에 따른 새로운 인연의 얼굴을 수數로 표현합니다. 그 또한 인연의 얼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 하나도 그냥 표정이 아니라 그 때의 모든 인연을 담아 삼세의 흐름을 모두 나타내면서 시간과 공간의 총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살펴보면 어느 것 하나 그것으로 절단되어 그것으로 있을 수 없지요. 그것이 인연因緣이며 자연自然입니다.
언어나 수數나 얼굴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그것이 인연이며 자연이니 아무런 꾸밈이 없습니다. 말을 꾸미고 언어를 조작하고 표현을 숨기고자 하는 의도는 업에 매인 얼굴입니다. 자연으로 있으면서 자연스럽지 못한 것입니다. 인연의 흐름인 무상무상을 읽지 못한 들뜬 마음으로 허망하지요. 1
- <대승기신론2> p32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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