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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에서는 현상의 변화 이면에 변화하지 않는 실재로서의 존재를 실체로 여기고, 그것이 진실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와 같은 실체로서의 존재는 오직 망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한 개체로서의 '빔[空]'이 다시 전체의 인연을 나타내면서, 함께 살아가는 무상한 변화가 '실實'이 됩니다. 그래서 실도 아니고 허도 아니라고 합니다[無實無虛]. 서양에서 말하는 현상 너머의 실재가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인연의 현상을 진정한 삶으로서의 실實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곧 서양에서는 변화하는 현상의 환幻 너머의 실재를 이야기한다고 한다면, 불교에서는 환 너머의 실재야말로 환도 되지 못한 환이라는 뜻에서 망념에 의한 집착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환이 환인 줄 알면서 환의 실재성을 놓는 순간, 무상한 변화가 그 자체로 생생한 삶이 된다고 봅니다.
빔[虛]이 실實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아나 불성 등이 실實로서 이해되거나 그것을 찾았다고 하면, 빔[空:虛]을 놓치고 다시 망념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수 스님께서는 빔이야말로 흐름에서 깨어 있는 삶을 사는 바탕이 된다고 보신 것입니다. 빔을 빔으로 보는 것 그 자체가 '실재實在'인 것입니다. 환 너머에 실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이 환인 줄 알게 되면 실재가 환이 되므로, 찾을 수 없는 실재가 없게 됩니다. 그때가 마음을 쉬는 때로 허상조차 놓을 때입니다. 허의 인연이야말로 허상의 실재를 깨뜨리는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 그 자체가 바로 인연의 빔이므로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해도 모든 망상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1
- 정화스님 풀어씀, <중론> p7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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