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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있고 멸이 있으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생이 있고 멸이 있고 그것으로 다시 생이 있고 멸이 있으면 생도 없고 멸도 없는 불생불멸의 영원한 흐름이 지속된다. 생멸의 찰라는 한찰라의 생멸이 생이 곧 멸이고 멸이 곧 생으로 작용하면서 매찰라가 새로움이다. 그런데 이 새로움을 버리고 이미 멸한 전찰라의 생을 고집하면 과거의 생을 지속하게 되므로 삶의 본래 흐름을 이탈하게 되어 괴로움이 생긴다. 찰라찰라가 그러하듯이 우리의 생을 이와 같이 사는 삶이란 생하는 것을 소유하지 않고 즉 멸로 가도록 긍정하는 것이다. 즉 내려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매순간을 새롭게 살 수 있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성인의 삶이 꼭 이와 같다.
그러므로 성인은 함이 있어도 함이 없는 것[無爲]으로 처신하며,
말로 할 수 없는[不言]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다.
온갖 것을 만들어내면서도 그것에 대해 내세우지 않으며,
생겨나게 하고서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으며,
그렇게 되도록 하고서도 그것에 의지하지 않으며
공로를 이루고도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거기에 머물지 않는 까닭에 그에게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不居
夫唯不居 是而不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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