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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행과 불행은 누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그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 삶, 내면의 평화뿐만 아니라 남으로부터도 아주 당당한 삶, 세상에 굴림을 당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굴리는 삶, 이런 삶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현실에 맞지 않게 들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회에 소속된 사람들 중에 나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담배를 피운다고 칩시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좋은 담배를 피우고 싶을 겁니다. 그래서 담배 피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그들에게 내가 담배가 몸에 해로우니 피우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계속 피울 겁니다. 사실은 아무리 좋은 담배도 안 피우는 것보다 못합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더 좋은 담배를 피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담배를 안 피우는 일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고 담배를 안 피우면 모든 문제도 사라집니다. 그건 불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좋은 담배를 피우더라도 안 피우는 게 더 좋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담배를 피운다는 전제 아래에서 더 좋은 담배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담배를 안 피우는 게 좋다는 것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더 높은 지위,더 많은 돈, 더 많은 인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지위와 돈과 인기가 좋다는 생각, 그것은 마치 더 좋은 담배를 피우는 게 좋다는 생각과 같은 것입니다.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행복한 출근길> p99)
두번째로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고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경우는 담배를 피운 습관, 즉 업식을 버리지 못해 그런 것이니, 이를 무아에 적용해 보면 무아를 알되 무아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업식 때문이니 업이 계속 상속되지 않도록 '아상我想'을 딱 끊어야 한다. 아상이 생길 때마다,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마다 딱 끊어야한다. 이 끊는 것이 수행이고 수행 없이는 '아상'이 끊어지지 않는다. 담배 피우고 싶은 주기적인 충동, 이 담배의 윤회를 벗어나 담배를 끊고 담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처럼, 해탈이란 '아상'이 생겨나는 윤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즉 無我로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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