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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에의 의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 내지 해석은 이렇다.

 

힘은 스피노자의 용어를 따르면 코나투스다. 존재를 지속하려는 경향성.

힘은 니체에 따르면 능동적인 힘과 반동적인 힘이 작용하는데 능동적인 힘은 좋아하는 것을 밀고 나가는 힘이고

반동적인 힘은 싫어하는 것을 밀어내는 힘이다. 힘에는 능동적인 힘 만큼 반동적인 힘이 대응하고 있다.

즉 싫어하는 힘이 더 세다면 좋아하는 힘이 약한 것이고, 

만일 좋아하는 힘과 싫어하는 힘이 반반이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고민되는 상황이다.

힘은 지속하려는 경향성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려고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려고 하는데

이때 경향성이 형성되는 흐름으로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긍정과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부정이

이 경향 속에서 의지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의지는 힘에의 의지다. 의지가 별도의 의지력을 갖지 않는 것에 유념해야한다.

 

힘은 업業이다. 힘은 어떻게 생기는가. 힘은 존재를 지속하려는 경향성인데, 이 경향성은 오온五蘊에서 비롯된다.

오온, 즉 色受相行識의 쌓임은 색수상행식의 윤회다. 이 굴림이 업식業識을 만들고 업의 경향성은 눈덩이가 불어나듯 굴리면 굴릴수록 힘은 더 커진다. 힘이 커질수록 힘에 의지하는 의지도 커진다. 즉 긍정 또는 부정하는 관념도 커지고 무거워진다.

이런 의미에서 힘에의 의지는 업에의 의지이다.

힘에의 의지를 업에의 의지로 이해할 때, 힘에의 의지를 권력의지라고만 할 수 없다.

업의 방향은 대개 권력을 향하지만 또 권력을 해체하는 쪽으로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업의 경향성이 권력을 향할때는 업이 자아의식과 결합될 때이다. 

업을 '나'라고 집착할때 업의 경향성은 나와 나의 것에 몰두하게 된다.

그래서 힘은 나와 나의 것을 향해 밀고 나간다. 나에게 좋은 것은 취하고, 나에게 싫은 것은 제거하면서.  

반면 업이 권력을 해체하는 쪽으로 작동할 때는 업이 자아와 결합하지 않고 자아없음[無我], 또는 '모두 함께'와 결합할 때다.

힘이 나와 나의 것을 향하지 않고 '모두 함께'를 향하기 때문에 차별을 두지않고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이

힘자체로서 나아간다. '불수자성 수연성不守自性 隨緣性'

 

업에의 의지는 색수상행식의 윤회인데 윤회를 벗어나는 방법으론 색수상행식 중에 행을 닦는 수행修行이다.

수행을 통해 행의 지멸이 이루어지면 업에의 의지는 의지작용 없이 업으로만 흘러간다.

업으로만 즉 힘자체로만 흘러갈때 의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며 힘은 무상무아로, 중도로 흐른다. 

이렇게 힘은 모두가 함께 어울려 있는 세계에, 고루고루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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