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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통(횡단)학

선업과 악업

T1000.0 2013. 1. 21. 09:53

선과 악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것들도 역시 우리가 사물을 그 자체로 고찰하는 한, 사물의 있어서의 아무런 적극적인 것도 나타내지 않으며, 사유의 양태 또는 우리가 사물들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형성하는 개념일 뿐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사물이 동시에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으며, 선과 악에 무관한 것이 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음악은 우울한 사람에게는 좋고,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나쁘며, 귀머거리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러나 사정이 그러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말들을 보존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본성의 전형으로 볼 수 있는 인간의 관념을 형성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러한 말들을 앞에서 언급한 의미속에서 보존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에서, 선이란 우리가 우리 앞에 설정해 놓은 인간본성의 전형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것이다. 또 악이란 우리가 그 전형처럼 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임을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린느 인간이 이 전형에 더 가까이 또는 덜 가까이 다가가는 한에 있어서 그 인간을 더 완전하다거나 더 불완전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특히 주의해야할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 보다 작은 완전성에서 큰 완전성으로 이행한다거나, 보다 큰 완전성에서 보다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가 하나의 본질 또는 형상에서 다른 본질 또는 형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말이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이 곤충으로 변하는 경우처럼 말이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의 활동능력이, 그의 본성에 의하여 이해되는 한에 있어서, 증대하거나 감소한다고 생각한다.(<에티카>p 235)

 

T1000.0 : 선악은 그자체로 없다. 모든 사물은 그자체로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즉 공하다. 그런데 인간의 영역에 있어서 선과 악이 형성된다. <에티카>는 인간본성의 전형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단이 되는 것을 선으로, 방해하는 것을 악이라 하는데, 둘을 가르는 인간본성의 전형이란 뭘까?  

 

앉아 있음이 움직임이고 움직임이 앉아 있음이라고 한다면 착한 일이 악한 일이고 악한 일이 착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앞의 이야기는 의타기성인 연기실상에 대한 투철한 깨달음이 전제된, 원성실성의 비로자나 부처님이 엮어 내는 사사무에의 화엄세계를 말하고, 뒤의 선악은 연기실상을 알지 못하고 나는 나, 너는 너라는 분별로 된 중생 세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선을 행하고 악을 그쳐야 함은, 선은 분별에서만 존재하는 나와 나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하게 되어 마침내 무분별의 하나된 세계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고, 악은 나와 너의 벽을 더욱 두텁게 하여 삶의 본래면목인 진여자성의 나툼을 알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선이 이와 같은 힘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행해지고 있는 곳이 변게소집성의 장이기 때문에 유위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조 스님께서는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고 너의 본래면목 자리를 봐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본래면목이 사사무애 의 비로자나 부처님이기 때문이고 선악분별의 이원성을 벗어난 곳에서 모든 만물이 제 모습을 뚜렷이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법성게> p160)  

 

T1000.0 : 선악이 본래 없는, 본래면목의 자리가 <에티카>가 말하는 인간본성의 전형이 아닐까. 그렇다면 선은, 또는 선업은 나와 너의 벽을 허물어 마침내 무분별의 하나된 세계에 이르게 하는 활동이며, 반대로 악업은 나와 나의 것을 고집하여 분별의 벽을 두텁게 하는 활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 요컨대 선업은 무아無我를 향하고 있고 악업은 무아를 등지고 있다. 선업을 통해 선악을 너머, 본래면목의 장으로 진입한다는 것[유위에서 무위의 세계]은 <에티카>가 말하는 오직 기쁨만이 충만한 기쁨의 윤리학으로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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