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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行에서는 아와 법의 명확한 분별을 할 수 없고, 식에서만 합니까?

 

수상행이 순서적으로 어떤 관계를 갖기는 하겠습니다만, 나름대로 특성을 가진 마음작용 중의 하나입니다. 수는 수 나름대로 의意의 분별을 동반하며, 상과 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와 법의 분별은 식장이 이루어지자마자 작용하고 있습니다. 현행의 식장[眼識 등]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종자로서 '분별의 경향성을 상속'합니다.

아와 법을 분별할 수밖에 없게끔 구조적으로 가꾼 힘을 무명이라고 합니다. 식에 와서 분별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우리 앞에 분별되어서 수상으로' 일어납니다. 근본적인 무명의 힘에 의해서 분별된 식의 흐름으로 볼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힘을 거슬러 올라가면 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어 간다는 것, 지켜본다고 하는 말은 지금 생사의 유전문을 환멸문으로 바꾼다는 것입니다. 환멸문으로 지켜보는 수행, 틈틈이 마음을 지켜보는 것, 파수꾼, 지킴이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분별의 제6식은 사라지고, 무분별인 묘관찰지의 힘이 살아납니다. 전에 수상행이 저절로 앎으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유식에서 각 심소는 오온의 수상행을 자세하게 나눈 것이기 때문에, 수상행과 마찬가지로 저절로 자기표현을 아는 속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식만 아법의 분별을 알고 행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행 그대로가 앎입니다.(206)   

 

<천의 고원>의 6장은 1947년 11월 28일. 어떻게 기관없는 신체를 이룰 것인가?라고 제목으로 되어있다. 저자들의 따르면,11월 28일 이날은  아르토가 유기체에 반대하여 기관없는 신체를 만들고자 선포한 날이며 '신의 심판'에 반대하여 봉기한 날이라고 말한다.

 

신체는 신체다. 그것은 단일하다. 기관은 필요없다. 신체는 결코 유기체가 아니다. 유기체는 신체의 적이다. 기관없는 신체는 기관에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구성되고 위치지워져야 할 그것의 '진정한 기관들'과 더불어 유기체에, 기관들의 유기적 조직에 대립한다. 신의 심판, 신의 심판의 체계, 신학적 체계는 바로 유기체를, 유기체라고 불리는 기관들의 조직을 만드는 신의 조작이다. 왜냐하면 신은 기관없는 신체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고, 그 자신이 최초가 되기 위해, 유기체가 최초이도록 하기 위해 기관없는 신체를 추격해서 잡아 찢어버리기 때문이다. 유기체는 이미 그것, 신의 심판이다.[각주:1]

 

각설하고, 신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문화적 배경을 염두하고 본다면 신의 심판과 유기체는 "종자로서 분별의 경향성을 상속"하게 하는 신의 심판과 "아와 법을 분별할 수 밖에 없게끔 구조적 힘으로 가꾼 힘"이 유기체라고 불리는 기관들의 조직을 만드는 신의 조작에 해당한다고 볼수 있다. 기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에 반대하는 것은 종자의 분별의 경향성이 상속되는 것에 저항하고 구조적인 힘에 의해 각 기관이 분별이 되어 유기체로 고정되는 것에 반대한는 것이다. 아르또와 저자들이 주목하는 지점과 유식송과 해설한 정화스님이 주목하는 지점이 회통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르또와 <천의 고원>의 저자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아 여기에 그 생각을 두서없이 옮겨논다.

 

 

 

 

 

 

 

  1. <천의 고원> p16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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