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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면 목화금수는 흙그릇의 모양이고 토는 흙이다.
목화금수가 봄여름가을겨울로 그릇 모양을 표현하므로 각각이 다르지만 다 흙이라는 바탕에서는 같다.
모든 그릇의 모양과 흙이 하나이며 동시에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본모습이다.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더 뛰어난 게 아니다.
봄이 여름보다 뛰어나지 않으며 가을이 겨울보다 모자란 것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실재하는 모습 자체가 완전한 것이며 따라서 완전한 것에서 완전한 것으로의 이행이 있을 뿐이다.
봄여를가을겨울 어떤 것도 무엇이 있어 봄여름가을겨울로 변하는 것이 아니고 그 모습하나하나 자체가 변하는 본모습이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이와 같이 인연 조건에 따라 오행을 나투고 있다.
하나하나 생명이 오행을 표현하고 있고 다시 하나하나 생명은 뭇 생명 전체로 어울린 오행을 표현하고 있다.
즉 우주의 존재 하나하나가 흙그릇이고 그 우주 전체가 또한 흙그릇이다.
때문에 무엇이 무엇보다 우월한 것도 없고 열등한 것도 없다.
실재한다는 것과 완전하다는 것은 동일하다.
길가에 핀 들꽃보다 사람이 우월하지 않고 개가 사람보다 열등한 존재도 아니다.
다 모두가 한데 어울려 완전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살고 있는 연기적 세계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연기적 세계을 깨트리는 핵심적인 원인은 '나라는 실체없는 생각'과 '생사에 대한 착각'이다.
요컨대 나의 몸이 '나'가 아니다. 또 내가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생각이 바로 나다. 이 생각이 세계를 만들고 있다.
각자의 세계가 있고 다양한 각자의 세계가 겹치고 포개져 공통 개념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생각은 이기적 종자의 영향아래서 종자가 죽음으로 위협받으면 싫어하고 성내는 감정을 내고 반대로 生으로 북돋으면 좋아하고 욕심을 내는 쪽으로 기억해 좋은 것은 취하려하고 싫어하는 것은 버리려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나누고 구분지음으로써 좋아하는 것은 소유하려하고 싫어하는 것은 소외시키면서 오히려 스스로가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번뇌를 만들고 있다. 왜냐하면 어울려 사는 하나된 세상에서 나를 소유하려하나 나는 본래부터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이 바로 난데 나라는 생각은 실체가 없어 소유할래야 소유할 수가 없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하니 밑빠진 독에 물붇기 식으로 욕심과 성냄이 끝이 없고 번뇌가 가시지 않는다. 우리는 이 번뇌를 통해 일체를 되돌아봐야한다. 바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