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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常은 常見과 斷見 사이의 치우치지 않는 中道인데 상견[생]이 아니면서 단견[멸]도 아니고 상견[생]이 아닌 것도 아니면서 단견[멸]도 아닌 것도 아닌 묘한, 말로 포착할 수 없는 흐름의 양상이다.
음양을 추상할때 -- ― 으로 표현하는데 음의 표현은 단견을, 양의 표현은 상견을 추상한다고 볼 수 있다.
음양은 氣의 흐름으로 표출되는데 기를 이야기할때 생하고 멸한다고 하지 않고 모이고 흩어진다고 한다.
이는 기가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불생불멸임을 표현한다.
음양은 실체가 없으며 현상으로만 존재하며 그 자체가 활동이다. 항상 활동하고 있으며 이 활동은 음과 양에 머물지 않는 중도로 모습을 드러낸다. [생명활동이 곧 중도이다] 언어를 빌어 음과 양이 음으로만 양으로만 표현될때가 있더라도 음으로만 있을때는 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양은 없음으로 있는 것이고 양만 있는 것은 양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음이 없음으로 있는 것이다. 때문에 없음과 있음이 등가이며 이 없음과 있음은 조건의 변화에 따라, 즉 인연에 따라 흩어지고 모이는데 흩어지면 안보이고 모이면 보이는 것이다.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으로 분별하지만 인연따라 쓸모있음이 없음이 되고 쓸모없음이 있음이 되므로 생겨나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다. 오직 氣의 무상한 흐름만이 있다.
음양을 양의(兩儀)라고 말하는데 음양이 상대하면서 또한 상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氣는 따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음양의 끊임없는 변화가, 즉 무상이 기의 흐름이다. 그러므로 無常은 氣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氣를 말하는 순간 우리는 氣에서 멀어지게 된다. 氣라고 하는 말하는 순간 기는 무엇이다라고 말해지는데, 기라고 포착되는 기는 우주 전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기를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는 실재하지만 기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기를 음과 양으로 추상할 뿐이고 기는 음도 아니고 양도 아니고 음양도 아니다. 음이라고 할 것도 없고 양이라고 할 것도 없으므로 음양이라고 하는 것이다[名可名 非常名]. 기는 언어를 떠나 있음을 명심해야한다.[道可道 非常道] 기는 활동이다. 활동 그자체며 주체도 대상도 없다. 오직 氣만이 있을 뿐이다.
1.
반면 세계는 언어 속에 존재한다. 언어가 세계를 만드는데, 언어를 통해 마음씀이 자리잡고 자리잡은 마음씀에 따라 선악업을 짓게 되고 이 선악업으로 다음 생을 산다. 때문에 천국의 마음씀을 쓰면 다음 생에 천국에 살겠고 지옥의 마음씀을 쓰면 다음생에 지옥에 살겠고 극락의 마음씀을 쓰면 극락에 살고 개의 마음씀을 쓰면 개로 산다. 어떻게 행동하느냐, 어떻게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 그대로 살게된다. 그런데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마음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오직 氣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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