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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아식 속에 종자가 들어있는 것은 지금 우리 활동가운데서는 그렇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사를 넘나들때는 아뢰아식 그 자체로 정보의 한 종자로 변해버린다. 다음 찰라가 될때에는 그 힘들이 전부 합쳐져서 오늘 우리들의 얼굴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아뢰아식이란 것이 있어서 우리가 계속해서 동일한 아뢰아식 속에서 정보를 저장해서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매순간순간마다 어떠한 정보를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생사가 계속 되기 때문에 생사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새로운 모습들의 변화만 있지 이것이 삶과 죽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을 여실히 알면 우리가 생사가 두려움으로 남아서 번뇌라고 경험됐지만 그 자체가 죽음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사가 아닐때는 열반이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생사라고 하는 정보를 잘못 읽어서 그것이 두려움과 괴로움이 될때는 생사가 되지만 그렇지 않고 있을 때는 우리가 열반이 된다. 즉 아뢰아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아뢰아식이라고 하는 것이 만일 따로 있다고 하면 개체개체마다 자성이 있다고 하는 말과 다른 것이 없다. 그래서 여기에서 安樂이 됐을 때는  이 정보라고 하는 과정중에서 아와 법을 만들어낸 쪽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아와 법이 생사를 하고 번뇌를 이끌어냈지만 그런 작용은 전부 사라져서 여기에 들어있는 모든 활동의 에너지들이 삶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작용하는 지혜로 바뀐다.[각주:1]"

 

T1000.0 : 아뢰아식은 종자라고 말할 수 있고 종자는 정보 자체다. 종자가 그릇이고 정보가 내용이 되어 정보를 함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릇 자체가 정보인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릇이 매순간 모양을 바뀌며 정보를 표현하는데 그것이 지금의 얼굴이다. 생사가 없다고 물리적 아픔이 없는 것이 아니다. 생사는 그대로 있으면서 생사가 없음을 바로 아는 것이 열반이여서 열반이 생사를 떠나있을 수 없다. 생사를 떠나 따로 열반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이 육신 그대로 열반을 사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육안과 혜안이 따로 있지 않아 육안이 혜안이고 혜안이 육안이다. 

 

 

  1. 정화스님 <유식강의> 녹취록에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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