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요컨대 나는 나 자신을 구성주의의 대표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사 내가 반복해서 계속 구성주의자라고 불린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럼 선생님은 스스로를 뭐라고 부를 건가요? 어떤 종류의 명칭이 선생님의 입장이 갖는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 줄까요?

대답이 망설여지는데요. 왜냐하면 이러한 명칭은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것에 부정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명칭이 붙으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합한 명칭을 요청받을 때마다 나는 종종 내 자신을 -진지하게, 그러나 장난스럽게- "슈퍼 실재론자"라고 부릅니다. 무수한 동등하게 타당한 실재들의 존재를 믿는 '슈퍼 실재론자'라고 말입니다. 더욱이 모든 상이한 실재들은 상대적인 실재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것은, 절대적 실재를 그것들의 상대성을 측정하게 될 준거점으로 가정하는 것을 함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있음에서 함으로 53)

2.

작품의 제목은 어떻게 짓습니까?

나는 가능한 한 가장 특색없는 제목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늘 작품을 '이러저러한 것을 위한 습작'이라고 부릅니다. 그림을 기억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 말버러 갤러리가 제목을 덧붙입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전시 등을 위해 여러 작품들을 모을 때 작품에 제목이 붙어 있으면 일이 보다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갤러리가 '삼면화-T.S. 엘리엇의 시 <스위니 아고니테스>로 부터 영감을 받은Triptych-inspired by T.S. Eliot's poem 'Sweeney Agonistes'이라고 제목을 붙인 그림의 경우, 그들은 내게 그 이미지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질문했습니다. 나는 당시 <스위니 아고니스테스>를 읽고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그렇게 제목을 붙였죠. 이런 식으로 제목이 생기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면 특색이 없는 제목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제목이 이미지 안에서 거짓말을 하고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 제목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육점 41)

3.
하지만 당신도 아시겠지요? 우리가 인상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놀라운 일은, 그 모든 화가들에 대해 생각하자마자 그들이 얼마나 서로 다른지를 알아차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정의를 내리는 데 신중해야 합니다. 위대한 화가는 결코 하나의 범주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이러한 화가들은 인상파이고, 다른 사람들은 표현주의자들이며, 그리고 또 다른 화가들은 입체파라고.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아무 말도 안 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당신은 그림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어떤 양식을 단지 자기 동일시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화가의 잔인한 손 100)

4.
문제는 그런 이름표들이 상호이해와 상호 귀 기울임을 방해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그것이 구성주의라 불리건, 음주주의 혹은 갈채주의라 불리건, 어떤 철학적인 범주에, 아니면 다른 범주에 엮여 들어가건 그 귀결점은 사람들이 사물 자체를 너무 성급한 이름표로 수습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름표가 인간의 사유에 너무 강한 방향성을 부여해 버린다는 말입니까?

그 이상입니다. 이름표는 전체 사고를 말살시킵니다. 곧바로 클럽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그게 좌냐 우냐 상위 범주인가 아니면 하위 범주인가 혹은 차별화해야 하는가 하는 식으로 서로 다툽니다. 움베르또 마뚜라나는 어쩌면 구성주의자가 아니라 생성주의자 아닌가요? 왜냐하면 그는 실재의 구성에 대해서가 아니라 늘 실재의 생성에 대해서 말하니까요. 하인츠 폰 푀르스터라는 사람의 사고는 오히려 포스트모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은 아닌가? 에른스트 폰 글라저스펠트는 '이행론자'로 봐야 하나요? 그는 우리 발명품들이 실재로 이행한다고 강조를 하니까요. 아닙니다. 제 생각에 구성주의라는 이름은 (구성주의) 이면에 있는 사유의 세계에서는 아주 끔찍한 재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구성주의라고 불리는 것은 다만 실재의 당연성을 회의하는 하나의 회의론적 태도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유방식에 주의를 모을 수도 있으며 이미 주어진 판단이나 사고방식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게 제가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발명품 70)

'정답은 결정할 수 없는 문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괄호 없는 객관성  (0) 2022.03.14
오해와 성찰  (0) 2022.03.13
결정할 수 없는 문제  (0) 2022.03.13
청자의 해석학  (0) 2022.02.18
광산  (0) 2022.01.20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