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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란 어떤 결정된 원인에서 결과가 발생되는 것이 아닙니다. 원인도 결정돼 있지 않고 결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날 때 그 전 찰나가 그 결과에 대한 원인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늘 같은 결과를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정된 원인일 수 없습니다. 인과 관계가 분병하기 때문에 원인 없는 결과도 없고 결과없는 원인도 없지만, 결정된 원인이나 결과는 없습니다. 인과의 근본 원인으로 육계 1가 있을 수 없습니다.
육계관六界觀이 연기를 살펴보는 하나의 인식 방법은 될 수 있지만 아직 충분한 무자성적 사유가 아니므로 부처님의 연기법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연기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한 수행자를 위해서 육계관의 수행이 제시된다고하는 하지만 그 한계에 대한 철저한 살핌이 없다면 원인인 육계가 실재하는 것이 되어, 오히려 연기법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로막을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허공 등의 상에 의지해서 수행해서도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경계와 언어 분별이 오직 마음의 분별임을 알아차려 언어데도 속지 않고 형상에도 속지 않아야 하며, 마음조차 마음이라는 언어 표상으로 정의될 수 없고, 수행 가운데서 경험하는 특별한 마음의 경험조차 마음이 아닌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인연이 마음인 듯 형상인 듯 나타나지만 마음이라고 하는 자성을 갖느 마음이나 분별된 언어 표상에 맞는 실재의 형상 또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경계를 따르지 않아야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을 자각할 수 있고, 자각하는 마음이라야 경계를 따르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以心除心] 2
나는 스무 살 무렵에 마을 글방에서 <서경>을 배웠다. 그중 <홍범>편이 읽기 어려워서 고생하다가 글방 선생께 여쭈었더니,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는 읽기 어려운 글이 아니다. 읽기 어렵게 된 까닭이 있기는 하지. 그건 속된 선비들이 어지럽혀 놓았기 때문이다. 무릇 쇠,물,나무,불,흙의 오행이란 하늘이 부여된 것이요, 땅에 쌓인 것으로, 사람들은 이에 힘입어 살아 나간다. <서경> <홍범>편에서 우임금이 순서를 정한 홍범구주와 무왕과 기자가 문답한 내용을 보면, 오행이 하는 일은 정덕正德, 이용利用, 후생厚生의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오행의 작용은 중화위륙中和位育의 효과를 거두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한나라 때 선비들이 길흉화복을 독실히 믿어, 마침내 어떤 일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어떤 징조가 나타난다고 여기고, 만사를 오행에다 배당하고 확대 적용하여 허황되고 망녕된 주장을 하기를 즐겼다. 그리하여 이것이 잘못 흘러 음양학과 점술로 되었고, 이것이 둔갑하여 천문 역수와 미래 예언의 책으로 되어, 마침내 우임금과 무왕과 기자, 이세 성인의 본래 취지와 크게 어긋났을 뿐더러, 오행상생설에 이르러서는 그 오류가 극에 달하고 말았다.
만물치고 흙에서 나지 않는 것이 없는데 어찌 유독 쇠만이 흙을 어미로 삼는다 하겠는가. 쇠란 딱딱한 물질이니, 불을 만나 녹아내리는 것은 쇠의 본성이 아니다. 저 넘실거리는 강과 바다, 황하와 한수(양자강의 지류)를 보라. 이것이 다 쇠에서 불어났단 말인가?
돌에서 젖이 나오고, 쇠에서도 즙이 배어난다. 만물에 끈끈한 액체가 없으면 모두 말라 버리거늘, 어찌 유독 나무에만 물이 배었겠는가?
만물이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렇다고 땅이 더 두터워지지도 않는다. 하늘과 땅이 짝을 이루어 만물을 육성하거늘, 어찌 한 아궁이의 불붙은 땔나무가 대지를 살지게 할 수 있겠는가?
쇠와 돌이 서로 부딪치거나 기름과 물이 함께 끊을 때는 모두 불을 일으킬 수 있고, 벼락이 치면 불타고 황충을 묻어 두면 불꽃이 일어나니, 불이 오로지 나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상생한다는 것은 오행이 서로 자식이 되고 어미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힘입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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