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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칠판에 그림을 하나 그려놓고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DNA는 단백질들의 합성에 참여하고, 단백질들은 DNA의 합성에서 효소로 참여해." 나의 그림은 원의 형태를 띠었습니다. 칠판에 막 그린 것을 보는 순간 나는 크게 소리쳤습니다. "저런, 길레르모, 바로 이거야! 그 과정들의 이 순환성이 생명체계들을 자율적이고 경계지어진, 독립적인 존재들로 만드는 동학을 밝혀준다고." 나는 나중에 자기생산이라고 불리는 현상의 개념적 기초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나는 생명체계를 순환적인 체계로 서술했습니다. (함으로 155)
2.
1970년. 돈키호테는 마침내 프락시스를 하러 가고 방랑하는 기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포이에시스에 맞서기로 결심하고 방랑하는 기사에 대한 소설을 씁니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때껏 찾아 왔던 말이 이거야.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 그것은 자기생산을 의미합니다. 그리스 단어인 auto(자기)와 poiein(생산하다, 창조하다)으로 이루어져 있죠. 나는 생명체게를 본질적으로 특징짓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하나의 개념으로 성공적으로 집약시켰습니다. 그 용어가 순환체계들이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표현과는 달리 전혀 알려지지 앟았다는, 그리고 그들 자신의 작동들을 통해 스스로들을 존재들로 생산하는 체계들의 구성적인 과정들의 결과에 주의를 집중시켰다는 부가적인 이점도 있었습니다.
한 체계의 자기생산적 조직의 생산물은 바로 체계 그 자체입니다.
생명체계들은 자기의 폐쇄적인 동학 속에서 스스로들을 생산합니다. 그것들은 분자적 영역에서 자기생산적 조직을 공유합니다. 하나의 생명체계를 고찰할 때, 우리는 서로 상호작용하는 분자들을 생산하는 네트워크를 발견하는데, 이 네트워크는 분자들을 생산하고, 이번에는 이 분자들이 분자들을 생산하는 네트워크를 생산하고 자신의 경계선을 한정합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네트워크는 분자들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나는 자기생산적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분자적 영역에서 (자신의 작동들이 그 자신의 생산을 야기하는) 이러한 네트워크와 마주친다면, 우리는 자기생산적 네트워크를, 그리고 그 결과 생명체계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신을 생산합니다. 이 체계는 물질의 투입에 개방되어 있지만 그것을 낳는 관계들의 동학과 관련해서는 폐쇄되어 있습니다.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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