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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

자유에 관하여

T1000.0 2020. 2. 1. 10:34

1. 자유는 능력과 상관이 없다. 흔히 욕구를 해소할 능력을 자유로 생각해, 돈과 권력을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필경 자기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와 충돌해 억압과 왜곡, 불행을 낳는다. 자유가 불행을 낳는다는 건 불합리하다.

 

2. 자유와 선택. 선택할 자유가 주어졌을 때, 우리는 우리에게 나쁜 것을 선택할까? 나쁜 것과 좋은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할 때 선택하게 된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분명할 때 선택의 자유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불합리하다. 따라서 자유는 엄밀히 말하면 없다. 정합성에 따르는 결정만이 있을 뿐. 허나 우리는 어떤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 던저져 있고 또 각자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다 다르므로, 선택할 상황 속에서 선택할 자유를 보장해야한다. 자유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장치다.

 

3. 한편 독재는 개인의 다양성을 억압하는 체제로, 독재 체제에서 목숨을 건사하기 위해 독재에 투항하여 사는 삶은 좋은 선택일 수 있다.[각주:1] 독재에 복종하지 않는, 다양성을 억압하는 체제에 맞서는 자유를 추구할 선택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로서 자유는 다양성의 보장, 차이의 존중으로 관계 속에 있다. 즉 나의 자유가 아니라 너와 나의 자유가 본질이며 더불어 사는 지혜이다.

 

4. 개인에게 있어 최고의 자유는 어떤 상황에도 걸림 없는 자유다. 마치 물처럼, "불수자성 수연성".

 

"그 후로 원효는 특정한 신분이 없이 살았습니다. 원효라고 하는 성품, 원효라고 할 만한 어떤 명분이나 직분이 없었어요. 스님이 법당에서 청소를 하면 '스님이 청소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청소할 때는 청소부가, 농사를 지을 때는 그냥 농사가 됩니다. 장사를 하면 스님이 자사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장사꾼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이것이 <법성게>에서 이르는 불수자성 수연성입니다. 물이 그릇을 따라 모양을 바꾸듯이 '스스로의 성품을 지키지 아니하고 인연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원효라고 할 수 있는 고정된 성품이 없이 그저 인연따라 역활을 다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백억화신이에요.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동굴이든 절이든 원효대사가 처음 지었다거나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곳이 많습니다. 원효라고 할 것이 하나도 없다 보니 원효 아니라고 할 것도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보니 온갖 곳에 원효가 나타나지요. 그런데도 막상 원효는 아무 데도 없는 거예요.

(지금 여기 깨어있기 175)

 

5. 불수자성 수연성, 즉 자성을 따르지 않고 인연을 따라 이룬다는 것은 마뚜라나가 말하는 "구조적 정합성과 일치"와 회통한다.  

 

"인간 영역에서 자율은 한 사람의 독특하게 특징적인 어떤 것이 보존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유는 무언가 다른 것, 즉 성찰을 필요로 하는 인간 체험입니다. 엄밀히 말해, 결코 자유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해, 모든 사고와 모든 행동은 그 순간의 구조적 정합성들과의 일치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에 대안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구조적 정합성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대안적인 행동 방식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차로에 도달하게 되면 그들은 두 방향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여행을 계속하기 위한 두 개의 선택지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이 더 좋은 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우선 차이를 만들어서, 선택할 수 있기 위하여 두 방향들을 구분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쩌면 그들은 동전을 뒤집고, 그렇게 함으로써 마침내, 그 순간에 주어진 구조적 정합성들과 일치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 줄 차이를 드러내 주는 과정들을 위해 길을 나아갈 것입니다." (『있음에서 함으로』p121 )

만일 어떤 행위가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으로 분류될 수 없다면, (내가 깨달은 바가 이것인데) 우리는 그 행위가 끼어들어가는 관계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우리의 행위양식을 자율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내게 있어서는, 하나의 특별한 태도가 여기에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한 태도는 나와 형의 내면에 신뢰를 불어넣어주고, (존중심을 갖고 다루어져야 하는) 모든 인간의 자율과 자유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해 줍니다. 어느 것도 무조건적으로 고정된 타당성을 갖고 있지 않고, 그래서 헤아려 보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요.(228)

 

 

 

 

 

 

 

 

 

 

 

 

  1. 계 : 그러므로 자유로운 인간에게 있어 적시의 도피는 전투와 같이 큰 용기의 발현이다. 즉 자유로운 인간은 전투를 택할 때와 같은 용기 또는 정신의 결연함으로써 도피를 택한다.(에티카 4부 정리 6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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