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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저는 비엔나 시민일 뿐입니다. 이게 저 자신에 대해서 제가 받아들여야 하는 유일한 규정입니다. 저는 비엔나에서 태어났고 비엔나 출신입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제가 어떤 특정한 인식이론의 대변자라고 주장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으니까 당신의 말이 옳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맞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인식이론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다만 놀랄 뿐이고 이 세계로부터 매료당할 뿐이고 이 세계를 이해하려 할 뿐입니다. 오늘 아침 당신이 방문하기 전에 책상에서 제가 읽고 있는 책 위에 내려앉은 아주 작은 파리를 발견했어요. 저는 돋보기를 통해서 그 파리를 조심스레 관찰하고서 파리의 눈을 보고서 아주 놀랐어요. 그리고 다리의 움직임을 보고 관찰했지요. 그러다가 파리가 갑자기 날아가 버렸는데 아마 제가 너무 많이 움직여서 파리를 방해했나봐요. 이해가 됩니까? 정말 놀라운 겁니다. 기적이에요. 그 작은 파리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파리가 제 책으로 날아올 수 있을까요? 짝짓기를 하고 가족을 이루고, 어떻게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요? 파리의 뇌 무게는 아마 마이크로그램도 안 될 것예요. 크기는 밀리미터 밖에 되지 않고요. 그렇지만 그 조그마한 것이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요. 우리가 도와주지 않아도 홀로 세상에 살아남고. 문제는 이겁니다. 저는 이런저런 인식론에 종사하고 있지 않아요. 굳이 말하자면 저의 전체적인 인식이론은 하나의 호기심학 일 뿐입니다.
당신은 당신을 확정지으려하지 않는군요.
전체 어휘들이 저를 성가시게 해요. 누가 구조주의자, 실재론자, 객관주의자, 주관주의자, 포스트모더니스트 등에 대해 말하면서 이 모든 용어를 갖고 장난을 치려하면 저는 차라리 이렇게 말하겠어요. "감사하지만 됐어요. 저는 영화나 보러 가렵니다. 그게 더 재미있거든요"라고 말이죠. 우리가 그런 테마들에 대해서 서로 말하고 토론 할 때 그런 이름표를 떼 버립시다. 공개적인 토론과 논쟁이라는 무대를 통해서 이끌리는 당나귀에 우리가 왜 올라타야 합니까? 어떤 사람은 주관주의라 불리는 나귀에 타고 있고 다른 이는 객관주의라 불리는 나귀에, 또 다른 사람들은 상대주의자 혹은 실재론자, 구성주의자 혹은 해체주의자라는 나귀를 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고요. 어떤 이는 "매에~", 다른 이는 "무우~"라고 울고 있어요. 그리고 다양가기한 당나귀들이 서로를 향하여 달립니다. 그래서 생겨나는 결과는 어느 누구도 서로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발명품 67)
2.
이름표가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게 한다. 이름표에도 불구하고 분별없이 경청하기를 대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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