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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신에 대하여' 부록[각주:1]

 

1. 1부 정리.

- 신의 본성과 특성.

1)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2) 신은 유일한다는 것.

3) 신은 전적으로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작용한다는 것.

4) 신은 만물의 자유원인이라는 것과 어찌하여 그러한지에 관한 것, 모든 것은 신안에 존재하며 신 없이는 존재할 수도 파악될 수도 없을 만큼 신에 의존한다는 것.

5) 모든 것은 신에 의해 예정되어 있는데, 의지의 자유나 절대적 재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의 절대적 본성 또는 무한한 능력에 의해서 그러하다는 것.

 

2. 편견.

사람들은 흔히 모든 자연물이, 자신들처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진실로, 그들은 신 자신이 모든 것을 일정한 목적에 맞추어 지휘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이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만들었으며, 인간을 창조한 것도 인간이 신을 숭배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3. 고찰.

1) 어찌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어째서 모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이 편견을 받다드리는 경향이 있는지 그 이유.

2) 편견이 왜 오류인지.

3) 편견으로부터 선과 악, 공적과 죄, 칭찬과 비난, 질서와 혼란, 미와 추 그리고 일너 종류의 다른 것들에 관한 여려 편견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4.고찰 근거.

1) 사람들은 모두 사물의 원인을 모른 채로 태어난다는 것,  

2) 인간은 모두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3) 이러한 욕망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

 

5. 3.1)에 대한 고찰

1) 인간은 자신의 의욕과 욕망을 의식하고는 있으나, 자신들로 하여금 원하고 욕구하도록 결정한 원인들을 알지 못하기에, 꿈에서조차, 그것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음으로 인해, 자신들을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2) 인간은 항상 목적을 위해서, 즉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고로 그들은 언제나 이루어진 것의 목적원인만을 알려고 하며, 그것을 들었을 경우에는 만족해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 이상 의심할 어떠한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서 그것을 들을 수 없을 때에는, 자신을 돌아보고서, 평소에 자신이 어떤 목적에 의하여 유사한 것을 하도록 결정되는지를 반성해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정신에 의하여 다른 사람의 정신을 판단한다.

3) 더욱이 그들은 자신의 안과 밖에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적지 않게 도움이 되는 많은 수단들을, 예컨대, 보기 위한 눈, 씹기위한 이, 영양을 위한 식물과 동물, 비추기 위한 태양, 물고기를 기르기 위한 바다를 발견하므로 <그리고 다른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도 이런 식이고, 그들은 그것들의 자연적 원인을 의심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므로>, 그 결과 그들은 모든 자연물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수단들을 발견하기는 했어도, 스스로 그것들을 산출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자신들의 사용을 위해 그러한 수단들을 산출한 다른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물들을 수단으로 간주한 다음에는, 그들은 그 사물들이 스스로 만들어졌다고는 믿을 수 없었고, 오히려 그 수단들이 늘 자신들을 위해 산출되는 예에서 유추하여, 인간적 자유를 부여받은 어떤 지배자 또는 자연의 지배자들이 존재하며, 이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배려하고, 자신들이 사용하도록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이러한 지배자들의 성정에 관하여 아무 것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자신들의 성정에 근거하여 그것을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들이 신들 자신을 위하여 인간에게 의무를 지우고 인간으로부터 최대한 존경받기 위해서 모든 것을 인간의 사용에 맞추어 지휘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들 각자는 신이 자기를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총애했다. 그래서 그들 각자는 신이 자기를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총애하고, 자기의 맹목적 욕망과 한없는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전체 자연을 지휘하도록, 여러가지의 신을 숭배하는 방식을 자신의 성정에 근거하여 생각해냈다.

4) 그에 따라 이 편견은 미신으로 변질되었으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이것이 그들 각자가 온갖 사물의 목적원인을 인식하고 설명하는 데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인 이유였다. 그러나 그들이 자연은 쓸데없는 일(즉, 인간에게 유용하지 않은 것)을 행하지 않음을 밝히려고 애쓰는 동안, 그들은 단지 자연과 신들이 인간처럼 미쳐있음을 증명했던 것처럼 보인다. 바라건대, 사태가 결국 이렇게 되었는지 잘 보시라! 자연에 있는 그토록 많은 유익한 것들 사이에서 그들은 적지 않은 해로운 것들, 즉 폭풍우, 지진, 질병 등을 발견해야만 했다. 이것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라면, 인간이 신들에게 행한 악행으로 인해, 혹은 인간이 경신하는 중에 범한 과실로 인해 신들<이들을 그들은 자신들과 동일한 본성을 지닌 존재로 판단한다>이 화가 났기 때문에 발생했다. 그리고 일상의 경험이 이것을 부정하고,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유익한 것과 유해한 것이 경건한 사람에게나 불경한 사람에게나 차별 없이 똑같이 발생한다는 점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때문에 뿌리 깊은 편견을 버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로서는 이것을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다른 불가사의한 것들 중 하나로 간주하고, 그에 따라 자신들의 타고난 무지상태를 유지하는 편이 전체구조를 파괴하고 새로운 구조를 안출하는 것보다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들의 판단이 인간의 이해력을 훨씬 능가한다고 확신하였다. 그리고 이런 이유만으로도, 만약에 목적에는 관계하지 않고, 단지 도형의 본질과 특성들에만 관계하는 수학이 진리의 다른 규범을 제시하지 않았더라면, 진리는 영원히 인류에게 감춰져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수학 이외에도, 사람들<전체 인류에 비하면, 극히 소수이지만>로 하여금 이러한 공통적인 편견들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하고, 그들을 사물에 대한 참된 인식에 인도한 다른 원인들(이것들을 여기서 열거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도 들 수가 있다.         

5) 이상으로써 나는 첫 번째로 약속한 것을 충분히 설명했다. 자연은 아무런 정해진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모든 목적원인은 인간의 허구일 뿐이라는 것 등을 지금 밝히는 데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을 나는, 내가 이 편견의 기원으로 밝힌 기초들과 원인들에 의해, 그리고 정리 16과 정리 32의 계1 및 계2에 의해 또한 내가 자연에 있는 모든 것은 어떤 영원한 필연성과 최고의 완전성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밝히면서 근거로 삼은 모든 그러한 것들[정리들]에 의해 이미 충분히 입증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6. 3.2)에 대한 고찰

그러나 나는 목적에 관한 이 설이 자연을 전적으로 전도시킨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1)왜냐하면 실제로는 원인인 것을, 그것은 결과로 여기고, 또 역으로 <결과인 것을 그것은 원인으로 여기기>때문이다.

2)또 본성적으로 먼저인 것을, 그것은 뒤따르는 것으로 만든다.

3)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고이며 가장 완전한 것을, 그것은 가장 불완전한 것으로 만든다.

 

7.6.3) 설명

왜냐하면(앞의 두가지는 그 자체로 명백하므로 생략하고) 정리 21.22.23에서 입증된 것처럼, 신에 의해 직접적으로 산출된 결과는 가장 완전하며, 사물은 그것을 산출하기 위해 필요한 중간원인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불완전하다. 그러나 만일 신에 의해 직접적으로 산출된 사물들이 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그 최후의 사물들은, 그것들을 위해 처음의 것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므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우수한 것이 될 것이다. 또 이 설(說)은 신의 완전성을 부정한다. 왜냐하면 만일 신의 목적을 위하여 활동한다면, 신은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결핍된 어떤 것을 추구하고 있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학자들과 형이상학자들은 수요의 목적과 동화의 목적을 구별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역시 그들은 신이 피조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행한다고 인정한다. 왜냐하면 창조 이전에 대해서 그들은 신을 제외하고는 신의 활동목적이었던 것을 아무것도 가리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이 어떤 것을 위해서 수단을 갖추려고 했다는 것은 신이 그 어떤 것을 갖추고 있지 못하여 이것을 욕구했다는 것은 신이 그 어떤 것을 갖추고 있지 못하여 그것을 욕구했다는 것임을 필연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그 자체로 명백하다.

 

8.무지로의 환원

내가 여기서 못 본 체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은, 사물들에 목적을 부여하는 일에서 자신들의 재능을 과시하고 싶어 했던 이 설의 신봉자들이, 자신들의 설을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증명방식을, 즉 불가능한 것으로의 환원이 아닌, 무지로의 환원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설을 옹호할 다른 방법이 전혀 없었음을 밝혀준다. 예컨대, 만일 지붕에서 돌 하나가 어떤 사람의 머리 위로 떨어져 그 사람이 죽었다면, 이 증명방법으로 그들은 돌이 그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떨어졌다고 증명할 것이다. 만일 돌이 신의 의지에 따라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토록 많은 전후사정이 (왜냐하면 번번이 많은 전후사정이 일제히 일치하기 때문에) 우연히 일치할 수 있겠는가? 아마 당신은, 그 사건은 바람이 부는 때에 그 사람이 그 곳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우길 것이다: 왜 그 때에 바람이 불었는가? 어찌하여 그 사람이 바로 그 때에 그 곳을 지나고 있었는가? 만일 당신이 또, 그 때에 바람이 불었던 것은 전날까지도 날씨가 좋았지만 갑자기 바다가 거칠어져서이고, 그 사람은 친구의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면, 그들은 또 우길 것이다(왜냐하면 질문에는 끝이 없으므로). 그렇지만 왜 갑자기 바다가 거칠어졌는가? 왜 그 사람이 바로 그 때에 초대를 받았는가? 이런 식으로 그들은, 당신의 신의 의지, 즉 무지의 피난처로 도피할 때까지 계속하여 원인의 원인을 캐물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인간 신체의 구조를 보고는 놀라며, 그러한 대단한 기교의 원인들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이 기계적 기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적인, 또는 초자연적인 기교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손상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므로 기적의 참다운 원인을 탐구하며, 어리석은 사람처럼 경탄만 하지 않고 학자로서 자연적 사물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불경한 이단자로 간주되고, 보통 사람들이 자연과 신들의 해석자로서 숭배하는 사람들에게서 공공연히 비난받는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만일 무지가 없어지면, 자신들의 권위를 주장하고 방어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 어리석은 경탄도 또한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것들은 그만두고, 여기서 다루려고 했던 세번째 부분으로 옮겨간다.

 

9.3.3) 고찰

1) 사람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믿은 다음에는, 각각의 사물에 대하여 자신들에게 가장 유용한 것을 요체로 판단하고, 자신들을 가장 많이 만족시키는 온갖 것들을 가장 탁월한 것으로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물의 본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선, 악, 질서, 혼란, 따뜻함, 추움, 아름다움, 추함 등의 개념들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2)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자유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로부터 칭찬과 비난, 죄과와 공적 등의 개념들이 생겨났다. 후자에 대해서는 나중에 인간 본성을 다룬 후에 설명할 것이고, 여기서는 전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10.9.1) 고찰

1) 건강과 신의 경배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사람들은 선이라고 부르며, 이에 반대되는 것을 악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지 않고 단지 사물을 표상만 하는 사람들은, 사물에 관해서 아무것도 긍정하지 않고 표상력을 지성[각주:2]으로 여기기 때문에, 사물 및 자신들의 본성에 대한 무지한 채로 사물 안에 질서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왜냐하면 사물이 우리의 감각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는 경우에, 우리가 그것을 쉽게 표상하고, 따라서 그것을 쉽사리 기억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잘 질서 잡혀 있다'고 말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우리는 '나쁘게 질서 잡혀 있다', 혹은 '혼란스럽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표상할 수 있는 것들은 특히 우리를 기쁘게 하므로, 사람들은 혼란보다는 질서를 택한다(마치 질서가 우리의 표상력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자연 안에 있는 어떤 것인 것처럼). 또한 그들은 신이 모든 것을 질서 있게 창조했다고 말하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신에게 표상력을 귀속시킨다(아마도, 그들이 신은 인간의 표상력을 배려하여 사람들이 사물을 아주 쉽사리 표상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안배했다는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면).

그리고 아마도 그들은 우리의 표상력을 훨씬 능가하는 무한히 많은 것이 존재하며, 또한 우리의 표상력이 미약하므로 그것을 혼란시키는 대단히 많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구애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써 충분하다. 다른 개념들도 역시 표상력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자극하는 표상의 양식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무지한 사람들은 사물의 중요한 속성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말했듯이, 그들은 모든 것이 자신들을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믿으며, 어떤 사물로부터 자극을 받는 형편에 따라 그 사물의 본성을 선함 또는 악함, 신선함 또는 썩음 및 부패함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일 눈을 통해 보이는 대상으로부터 신경이 받는 자극[운동]이 건강에 좋으면, 이것을 야기한 대상에 대해 그들은 '아름답다'고 말하며, 반대의 자극을 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추하다'고 말한다. 코를 통하여 감각을 자극하는 것들을 그들은 '향기롭다' 또는 '악취를 풍긴다'고 말하며, 혀를 통한 것들을 '달다' 또는 '쓰다', '맛있다' 또는 '맛없다'고 말하고, 또 촉각을 통한 것들을 '단단하다' 또는 '부드럽다', '거칠다' 또는 '매끄럽다' 등으로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귀를 자극하는 것들을 '시끄러운 소리'. '듣기 좋은 소리 또는 화음을 낸다'고 말한다. 이것들 중 화음에 대해서는 신조차도 이것을 즐긴다고 믿었을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실제로 천체들의 운행이 화음을 발생시킨다고 확신한 철학들도 있다.

2) 이 모든 것은 각자의 뇌의 상태에 따라 사물을 판단한다는 것을, 또는 각자가 자신의 표상력이 자극받는 방식을 사물 자체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그러므로 (참고로 주의해 두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그토록 많은 논쟁이 생기고, 그 결과로 결국 회의론이 생기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신체는 많은 점에서 일치하면서도 많은 차이점들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나쁘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나쁘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에게 정연하게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불쾌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여기는 이러한 주제에 관하여 상세히 다룰 곳이 아니고, 또한 모두가 경험을 통해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머릿수만큼의 의견", "누구나 자기 나름의 관점으로는 슬기롭다"."미각의 차이만큼 두뇌도 차이가 난다"등의 격언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러한 격언들은, 인간이 자기의 두뇌상태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며, 또한 사물을 지성적으로 인식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감각적으로 표상한다는 것을 밝혀준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들이 사물을 지성적으로 인식한다면, 수학이 증명하듯이, 그 사물은 비록 그들 모두를 매혹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그들 모두를 납득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보통의 사람들이 자연을 설명하면서 흔히 사용하는 모든 개념들은 단지 표상의 양상일 뿐 결코 사물의 본성을 나타내지는 않으며, 그저 표상의 양상을 표시할 뿐이라는 점을 안다. 그리고 그것들은 마치 표상의 외부에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실재들인 듯한 명칭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것들을 이성의 유()가 아니라 표상의 유()라고 부른다.

 

11.

질문. 만일 만물이 신의 가장 완전한 본성의 필연성에서 생겼다면, 자연계의 그토록 많은 불완전성은 어찌 된 일인가? 이를테면 악취를 풍기게 될 때까지의 물건의 부패, 욕지기나게 하는 물체들의 추한 형상, 혼란, 해악, 죄 등은 어찌된 일인가? 

 

대답. 왜냐하면 사물의 완전성은 전적으로 그 사물의 본성과 능력에 의해서만 평가되어야 하고, 따라서 사물은 인간의 감각을 즐겁게 해주거나 불쾌하게 한다는 이유로, 혹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거나 거슬린다는 이유로 더 완전하거나 덜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질문. 왜 신은 모든 인간을 전적으로 이성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방식으로 창조하지 않았는가?

 

대답. 왜냐하면 신에게는 완전성의 최고 정도에서 최저 정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을 창조할 재료가 결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의 본성의 법칙들은 (정리 16에서 증명했듯이) 어떤 무한한 지성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산출하는 데에 충분하게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1. 황태연 옮김, <에티카>에서 인용. [본문으로]
  2. (인용자주)흔히 말하는 지성인할때, 지성이 무명인 이유. 표상력을 지성으로 믿기 때문에 잘못된 앎이 되어 무명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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