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대학의 교수들만 이런 비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옆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도, 혹은 심지어 친한 친구도 "아끼는 충정에서" 비난을 합니다. 저는 그 '충정'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것은 충정 어린 조언이 바로 제도적으로 규정되고, 학습의 형태로 훈육되는 그런 사유를 촉구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아들에게 장래를 생각하는 충정에서 취직과 출세를 권유하듯이 말입니다. 이 충정 어린 권유를 받아들이면, 해야 할 가장 좋은 길은 대개 사회적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좋은 주제'를 정하여, '좋은 방법'으로 연구하여 '좋은 결과'를 얻는 것, 혹은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거나 국가고시를 보는 것 등이지요. 여기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무엇을' 사유하..
이것[법의 승리]은 국가적 과학에 유목적 과학이 포섭되고 포획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각각각각의 영역에서 발생한 성과가 다른 영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이미 척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적 과학의 홈패인 공간을 불가피하게 통과하거나 그것과 결부하여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의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나 '기술'들이 다수적 과학은 물론, 다른 종류의 소수적 과학과 접속하려는 순간, 어느새 공통의 '소통수단', 공통의 '척도'가 되어버린 근대과학이나 서양의학의 개념들로 번역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경우 가령 '기'라는 비가시적이고 비형태적 개념은 가시적인 형태로 변환되어야 하고, 전기나 자기적인 현상으로 치환됩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와 반대로 이동적인 과학이 재생산적인 왕립과학 안으..
1. 오랫동안 그것[미분학]은 오직 비과학적 지위만을 지닌 채 고딕적 가설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 왕립과학은 그것에 대해 담나 편의상의 협약 내지 그럴 듯한 허구라는 가치만을 부여했을 뿐이다. 위대한 국가적 수학자들은 그 지위를 개선하려 최선을 다했으나, 그것은 엄밀히 말해 모든 역동적이고 유목적인 관념들, 즉 생성, 이질성, 무한소, 극한으로의 이행, 지속적 변이 등을 제거하고, 시민적, 정태적, 서수적 법칙들을 부과하는 조건 아래에서 그랬을 뿐이다. (천의 고원2 145) 또 국가적 과학은 유목적 과학으로부터 자신이 전유할 수 있는 것만을 보존합니다. 그 나머지는 어떤 현실적인 과학적 지위도 없는 한 묶음의 제한된 공식으로 전환시키거나, 아니면 외면하거나 억압하고 금지하지요. 아르키메데스의 기하학..
1. 국가를 항상 외부와의 관계속에서 보아야 하는 것처럼, 전쟁기계 역시 항상 국가장치와의 상호관계 속에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독립성의 관점이 아니라 상호관계 속에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독립성의 관점이 아니라 영구적인 상호작용의 장 속에서, 공존과 경쟁의 관점에서 외부성과 내부성, 변형의 전쟁기계와 동일성의 국가장치, 밴드와 왕국, 거대기계와 제국에 대해 사고해야 한다. 동일한 장이 국가 안에서 자신의 내부성을 한정할 뿐만 아니라, 국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나 국가에 대항하는 것 안에서 자신의 외부성을 서술한다."(천의고원2 142)(노마디즘2 339) 2. 명시된 적은 없지만, 저자들은 '원국가'란 권력의 집중이 '극한'을 향해 진행되지만 '문턱'을 넘기 전에 격퇴되고 방지되는 그런 국가로 정..
1. 먹고사는 데 필요한 것만 생산하면 되는 사회인가, 아니면 그것을 넘어서 비축하거나 축적할 것을 생산해야 하는가 하는 차이가 오히려 결정적입니다. 사실 노동자들 각자가 자신이 먹고사는데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야 지금이 훨씬 짧을 테지요.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문명화된 자본주의사회에선 그것만으론 결코 노동을 그만두고 쉴 수 없습니다. 반면 원시사회에선 그것이면 충분했던 겁니다. 클라스트르는 남아메리카 인디언의 예를 들면서, 돌도끼를 사용하던 그들에게 서구인들이 돌도끼보다 10배나 효율이 좋은 금속 도끼를 주었을 때, 그들은 그것으로 동일한 시간을 노동해서 10배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10분의 1시간을 노동해서 동일한 물량을 생산했다는 사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전쟁 상태에 대한 홉스와 관념 역시 그 등가적인 인간들이 거래하는 시장에서 출현했을 겁니다. 내 것은 조금이라도 비싸게 팔아야 하고, 남의 것은 철저히 싸게 사들여야 하는 끔찍하고 냉정한 전쟁 같은 상황, 그게 바로 시장의 상황이지요. '계약'이라는 관념이 시장에서 출현한 것임은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홉스 이후에 로크라든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의 자연 상태를 가정하고 있는 루소조차도 교역과 계약이라는 이 시장의 모델을 통해서 국가와 그것의 탄생을 설명하려고 하고 있는 셈이지요. (노마디즘2 333)
여하튼 지지 여부를 떠나서 그런 식의 '선물'과 '낭비'를 특징으로 하는 체제로서 포틀래치가 원시사회에서 부의 집중을 저지하는 메커니즘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포틀래치로 인해 추장이나 지도자가 선출되지만, 그것은 '축적된' 재화의 낭비를 통해 이루어진 만큼, 경제적 재화의 집중을 분산시키는 한에섬나 정치적 지도력의 '집중'을 인정하는 방식입니다. 이로써 경제적 부와 정치적 권력이 동시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지도력의 필요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권력의 집중을 최대한 약화시키는 메커니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마디즘2 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