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는 속도를 필수적인 성분으로 갖고 있지만, 도구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기가 던져져야 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반면 도구는 저항을 이겨야 하듯이, 중력을 견디고 이겨야 합니다. 도구와 결부된 것이 노동인데, 노동이 고통을, 더 나아가 그 고통을 견디는 인내까지 요구한다는 점을 생각해봅시다. 확실히 무기에서 속도는 결정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던지는 것은 속도 때문이며, 속도가 없으면 던지는 것ㅇ느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합니다. 바로 그 속도가 관통하는 힘을 만들지요. 반면 속도가 없다면, 던지는 것은 잘 받으라고 건네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때는 무기와 전혀 다른 성격을 갖습니다. 이런 점에서 무기의 속도는 운송과 구별됩니다. 속도와 운동을 구별한 것과 비슷합니다. 한 점에..
1. 투척과 투입 던져지는 것은 무기가 되기 쉽상이라고 해야 합니다. 도끼나 망치, 평범한 돌멩이도 던져지면 무기가 됩니다. 반면 칼이나 창도 손에 쥐고 무언가를 자르고 다듬는 데 사용되면 도구가 됩니다. 동일한 사물도 쥐고 사용하는가, 던져서 사용하는가에 따라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한편 "도구는 정복하고 이용해야 할 저항에 맞부딪치는 반면, 무기는 피하거나 창안해야 할 반격과 관련"(천의고원2 181)되어 있습니다. 도구는 자연의 저항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높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다리, 경도를 극복하기 위한 도끼처럼 가공하려는 재료의 저항을 상대하는 것이 도구입니다. 반면 무기는 적을 공격하거나 반격하기 위한 것, 혹은 적의 반격으로부터 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
이와 같이 몽골의 유목민은 민족이나 종교, 혈통 등과 무관하게 사람들을 '등용'하여 활동하게 했으며, 그것이 갖는 장점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탈영토화된 사람들로 자신을 재구성하는 한편, 거꾸로 그렇게 탈영토화된 인물들을 적극 '이용'한 거지요. 몽골인들의 제국이 민족이나 혈통과 무관한 일종의'코스모폴리탄적인' 국제주의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이러한 사실로 인해 단순한 상징성을 넘어서는 실질적인 의미르 갖습니다. 여기서 저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공식적으로 주장하면서도 '사회주의 조국'이란 관념에서 결코 벗어난 적이 없었고, 그로 인해 가령 스페인 내전에서처럼 그 위해한 '조국'을 위해 국제주의적 혁명을 저버린 소련의 경우가 떠오릅니다.(노마디즘2 404) *나는 육조혜능을 발탁한 5조 흥인이 떠오름.
이 조직은 앞서 말한 조직과는 전혀 다른, 혈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별동대'(특수한 부대/신체)입니다. 혈통으로부터 거의 완전하게 탈영토화된 조직이지요. "한편으로 실제로 혈통은 수적으로 조직되고 개편된다. 수적 구성은 새로운 원리가 지배적으로 되게 하기 위해 혈통 위에 포개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와 동시에 각 혈통으로부터 사람들이 차출되어 특수한 수적 신체를 형성한다."(천의고원2 177) "수적 조직이 혈통적 조직을 대체하는 것, 그리고 국가의 영토적 조직을 쫓아버리는 것."(천의 고원2 177) 둘 다가 전쟁기계에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이 이중의 계열을 통해 전쟁기계는 작동합니다. 이 둘 간의 긴장이 없다면, 권력은 어느 하나의 중심으로 귀착되어 버리고, 그 중심을 통해 조직은 '국가장치..
어쨌든 이젠 역사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저 아득한 시기의 유목민들에게서 다시 배워야 하는 건 아닐까요? 과거의 지울 수 없는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짐이기도 한 역사("역사를 인식한다"는 것은 그 거대한 무게를 개개인의 삶에 지우는 것이기도 합니다)를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향하여, 새로운 삶의 방식을 구성하기 위하여 '내려놓고' 떠나는 것, 역사라는 이름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클리나멘을 그리는 것 말입니다. 이를 위해 니체는 "망각하는 것을 배우라"고 하며, "비역사적으로 감각하는 능력을 얻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노마디즘2 410)
이런 점에서 드보르의 말대로 직선적 시간 개념은 제국의 시간 개념과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목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모든 사건들이 귀착되는 어떤 중심이나 고정점이 없습니다. 삶이 운동하는 행보를 따라 흘러가듯이, 사건도, 시간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건을 무화되지 않는 어떤 것으로 시간 속에 못박아둔다는 것은 그들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목민에게는 역사가 없지요.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으며, 사건들에 통일성을 부여하여 연결하는 어떤 해석도 남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목민은 승리해도, 사실은 패배한다고 하는 거지요. 몽골인들에 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위대한 영웅에 대한 일종의 문학적 서사시인 같은 책을 ..
1. 이런 수를 들뢰즈와 가타리는 '세는 수'라고 부릅니다. 반면 어떤 척도를 통해 비교되고 계산되는 수, 측량에 사용되는 수는 하나의 척도에 대해 정확한 비례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가령 5는 1의 5배이고, 20은 5의 4배고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여기서 1은 모든 수의 크기를 비교하는 척도가 됩니다. 이런 경우 어떤 수, 예를 들면 20은 다른 수를 떠올릴 것도 없이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1과 비교된 수고, 1이라는 척도에 의해 셈해진 수, '세어진 수'입니다. 유목민에게 수란 본질적으로 '세는 수'지 '세어진 수'가 아닙니다. 2. 세는 수는 더 이상 계량적 규정이나 기하학적 차원들에 종속되지 않고, 다만 지리적 방향들과 동적 관계를 갖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차원적 수나 계량적 수가 아니라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