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니체는, 자기 자신이 체험했기 때문에 한 철학자의 생애를 신비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철학자는 금욕적인 덕목들-겸손, 검소, 순수-을 독점하여, 그것들을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실제로는 거의 금욕적이지 않은 목적들에 사용한다. 철학자는 그것들을 자신의 독특함의 표현으로 삼는다. 철학자에게서 그것들은 도덕적 목적들도, 또 다른 삶을 위한 종교적 수단들도 아니며, 오히려 철학 그 자체의 이다. 철학자에게는 또 다른 삶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겸손, 검소, 순수는 이제 아주 풍부하고 넘쳐흐르는 삶, 능력으로 충만한 삶의 결과들이 되어, 사유를 정복하고 다른 모든 본능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자연Nature이라고 부르던 것이다: 욕구에 기초해서, 즉 수..
1. 나한테 괴로움이 되는 건 실제가 무엇이냐가 아니고 내 마음이 어떤가의 문제에요. 주위에 아무 일 안 생겨도 마음에서 그 환영에 사로잡히면 괴로움이 생기고, 주위에서 난리가 일어나도 내 마음에 아무런 작용이 안 일어나면 괴롭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의 괴로움은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지, 바깥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 괴로움은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어떤 문제 때문에 괴롭다고 할 때 외부의 사람이나 사물을 탓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괴롭다고 아우성치는 것은 다 잠꼬대와 같습니다. 호랑이한테 쫓기는 꿈이든 강도한테 쫓기는 꿈이든 벼랑 끝에서 떨어지는 꿈이든 어떤 꿈을 꾸..
1. 생산, 생산성, 능력에 기초하여, 즉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 2. 또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배우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 역량을 몇 가지로 정리해서 정해놓고 그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쉬운 예로 저에게 많은 강연 요청이 들어오는데 365일을 다녀도 다 해줄 수는 없습니다. 제 3세계 돕기 운동 역시 전부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하나하나는 356일을 해도 다 못한다고 하면서 굵직굵직한 사업을 대여섯 개나 진행하고 있습니다. 요령은 할 수있는 만큼 하는 거예요. 욕심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 요청이 들어오고 나에게 사명을 주니까 내 온 힘을 들여서 일하는 겁니다.
1. 어떤사람의 진정한 지혜는 영속적인 자기고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찰의 영역에(특정한 상황들을 정확하게 지각해 내는 것을 방해하는) 이러저러한 신념들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자발성에 있다는 것이 내 견해입니다. 2. 모든 것에 대해서 집착을 놓으면 한 발 떨어져서 보는 것과 같기 때문에 길이 보입니다. 이건 책을 많이봐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아이큐가 좋아서 생기는 것도 아니지요.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이 볼 때 명석해 보이는 것입니다. 부부 관계에서, 또는 세상의 일에도 명석해 보이는 것은 집착을 놓을 때 길이 환히 보이기 때문이에요. 오늘날 정치도 마찬가지예요. 정치에 빠져 있으면 정치의 해결점이 안 보여요. 한 발 물러나 있음녀 그게 잘 보이지요.
해서 다른 사람을 쓰면 그 사람도 기분 좋지요. 내가 명령하듯 시키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그 사람이 그것이 기꺼이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사는 것이 바로 쓰고 쓰이는 관계라는 것을 알면, 도움을 받으면 고마은 마음을 내되 위축되지 않고 내가 남에게 도움을 주되 바라는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 섭섭한 마음을 갖지않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을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쓸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베플 때 마음가짐, 받을 때 마음가짐 입니다.